붉은 기름이 떠오르는 순간, 태국의 식탁에 가까워져요
저녁 무렵의 주방에서 코코넛 밀크의 진한 부분을 냄비에 떨어뜨리면 처음에는 하얗고 달콤한 김이 올라와요. 거기에 레드 커리 페이스트를 넣고 나무 주걱으로 눌러 펴요. 1분, 2분 볶다 보면 냄비 벽에 붉은 주황빛 기름이 불쑥 떠올라요. 이때 서둘러 물을 붓지 않고 향을 깨우는 것이 깽펫에서 가장 즐거운 부분이에요.

깽펫(แกงเผ็ด / gaeng phet)은 태국어로 '매운 국물 요리, 카레'에 가까운 이름이에요. 흔히 태국 레드 커리라고 부르며, 붉은 고추, 레몬그라스, 갈랑갈, 카피르 라임의 껍질과 잎, 마늘, 샬롯 등으로 만든 붉은 페이스트를 코코넛 밀크로 풀어서 만들어요. 매운맛만 주인공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코코넛의 단맛, 피시 소스의 짠맛, 카피르 라임의 향, 바질의 푸른 향을 쌓아 올리는 요리예요.
톰얌꿍(일본어)이 신맛과 새우 향을 마지막에 세우는 수프라면, 깽펫은 처음에 페이스트를 볶아 향의 바탕을 만들어요. 카오소이(일본어)보다 면과 고명 준비가 적고, 가파오보다 불 다루기가 온화해요. 집에서 만들 때는 시판 페이스트를 써도 괜찮아요. 다만 페이스트를 코코넛 기름에 볶기, 가지를 무르지 않게 하기, 마지막에 바질을 여열로 넣기, 이 세 가지를 지키면 그냥 매운 카레가 아니라 태국 식당에서 느끼는 붉은 향에 가까워져요.
지킬 것은 붉은 페이스트를 볶아 기름을 내는 것, 코코넛 밀크를 너무 세게 끓이지 않는 것, 마무리 허브를 끓이지 않는 것이에요. 닭고기나 채소는 바꿔도 되지만 이 순서가 흐트러지면 맛이 흐릿해져요.
재료 4인분
이 분량은 밥에 얹어 든든하게 먹는 4인분이에요. 매운 페이스트라면 35g부터 시작하고, 매운맛보다 향을 우선하고 싶은 날에는 마지막에 고추를 따로 접시에 두고 각자 더하는 편이 가족이 조절하기 쉬워요.

시판 레드 커리 페이스트에는 새우, 어간장, 대두가 들어간 제품이 있어요. 피시 소스도 생선으로 만들어요. 알레르기가 있다면 구매 전에 원재료 표시를 확인해 주세요. 닭고기는 중심 온도 75도C, 또는 중심까지 하얗게 익은 상태까지 가열해요.
장볼 때 망설여지는 재료
깽펫의 맛을 좌우하는 건 가까운 마트에서 찾기 어려운 페이스트, 카피르 라임 잎, 피시 소스예요. 코코넛 밀크는 큰 마트에서 살 수 있기도 하니, 캔 타입을 하나 두면 락사나 아목에도 돌려 쓸 수 있어요.

| 우선순위 | 살 것 | 이유 | 남았을 때 쓸 곳 |
|---|---|---|---|
| 1 | 레드 커리 페이스트 | 붉은 향과 매운맛의 바탕. 대체하면 다른 요리가 되기 쉬워요 | 닭고기 볶음, 볶음면, 카오소이풍 수프 |
| 2 | 카피르 라임 잎 | 감귤의 푸른 향이 들어가 카레가 무거워지지 않아요 | 톰얌꿍, 생선찜, 볶음 요리 |
| 3 | 피시 소스 | 소금만으로는 나오지 않는 어간장의 감칠맛을 더해요 | 가파오, 솜땀, 팟타이 |
| 4 | 코코넛 밀크 | 기름을 내 페이스트를 볶는 핵심. 캔 타입이 안정적이에요 | 락사, 아목, 코코넛 조림 |
가장 먼저 볼 만한 건 레드 커리 페이스트예요. 병이나 봉지 용량이 큰 것은 저렴하지만 개봉 뒤에 향이 떨어져요. 처음에는 작은 것을 고르고 남은 건 냉장해 빨리 쓰는 편이 다음 한 접시까지 향을 지키기 쉬워요.
카피르 라임 잎은 없어도 만들 수 있지만, 있으면 향이 피어나는 방식이 한 단계 달라져요. 냉동품이면 한 장씩 쓰기 쉽고 톰얌꿍(일본어)에도 돌려 쓸 수 있어요.
코코넛 밀크는 기름을 내는 공정과 관련돼요. 종이 팩이라 기름이 잘 나오지 않을 때는 캔 타입으로 바꾸면 향이 나오는 방식이 안정돼요.
피시 소스는 소금으로는 낼 수 없는 어간장의 감칠맛을 맡아요. 작은 병이면 충분하니 간장만으로 바꾸지 말고 소량이라도 넣어 주세요.
만드는 법 페이스트를 기름에 깨우고, 가지를 무르지 않게
깽펫은 썰기, 볶기, 끓이기, 마무리 순서가 분명해요.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페이스트와 조미료를 계량하고 건더기를 썰어 두면 페이스트가 타기 전에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어요.
냄비에서만 맛을 보면 조금 짜고 조금 달게 느껴져요. 밥에 얹으면 딱 알맞게 희석되니, 완성 전 간 보기는 밥 한 숟가락에 카레를 조금 얹어 확인하면 실패하기 어려워요.
가정 주방에서 본고장에 가까워지는 분기표
깽펫은 건더기의 자유도가 높은 요리예요. 다만 어떤 건더기든 같은 방식으로 끓이면 닭고기는 단단해지고 채소는 부서져요. 고기와 채소의 익는 정도에 맞춰 순서를 바꾸면 집에서도 꽤 안정돼요.

| 바꾸고 싶은 재료 | 쓰는 법 | 가열 기준 |
|---|---|---|
| 닭 가슴살 | 저며 썰어 마지막 채소와 동시에 넣어요 | 약간 약한 중불에서 5–6분. 가운데가 하얘지면 멈춰요 |
| 돼지고기 얇게 썬 것 | 3cm 폭으로 썰어 닭고기 대신 페이스트에 버무려요 | 중불에서 표면 색이 변한 뒤 끓여요 |
| 두툼한 유부(튀긴 두부) | 3cm 크기로 썰어 채소와 동시에 넣어요 | 약간 약한 중불에서 5분. 표면에 소스가 묻으면 돼요 |
| 단호박 | 1.5cm 두께로 썰어 닭고기 뒤에 넣어요 | 10분쯤 끓여 젓가락이 쑥 들어갈 때까지 |
| 태국 가지 | 4등분해 물에 담가요 | 5분 안팎. 껍질에 윤이 나면 너무 끓이지 않아요 |
| 죽순 없이 | 새송이버섯 100g으로 대체 | 7mm 두께로 썰어 가지와 동시에 넣어요 |
현지 레시피에서는 붉은 페이스트 자체를 만들기도 해요. 말린 붉은 고추, 레몬그라스, 갈랑갈, 카피르 라임 껍질, 마늘, 샬롯, 소금, 새우 페이스트 등을 찧어서 향은 강하지만, 집에서는 재료 모으기가 어려워져요. 시판 페이스트를 쓸 때는 카피르 라임 잎과 바질만 더해도 향의 깊이가 생겨요. 전부 처음부터 만드는 것보다 어디를 더하면 맛이 달라지는지 아는 편이 평소 주방에서는 쓸모가 있어요.
팟타이처럼 새콤달콤한 쪽으로 가깝게 하고 싶어도, 깽펫에 라임을 많이 짤 필요는 없어요. 신맛은 식탁의 오이나 가벼운 반찬으로 더하고, 냄비 안은 코코넛, 고추, 피시 소스의 둥근 매운맛으로 마무리해요.
실패 원인 붉어지지 않아요, 묽어요, 너무 매워요
깽펫의 실패는 재료 부족보다 불 세기와 순서에서 일어나요. 붉어지지 않음, 묽음, 맵기만 함, 가지가 검게 변함. 이 네 가지는 냄비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면 고치기 쉬워요.

붉은 기름이 나오지 않아요
캔 코코넛 밀크가 고르게 유화되어 있거나, 불이 너무 약할 수 있어요. 페이스트를 넣기 전에 중불에서 코코넛 크림을 2분쯤 졸이고, 그래도 기름이 나오지 않으면 식용유 2작은술을 더해 볶아요. 중요한 건 기름을 많이 내는 게 아니라 페이스트의 날것 같은 기운을 날리고 향을 둥글게 하는 거예요.
묽어요
물을 너무 많이 넣었거나 채소에서 수분이 나온 거예요. 뚜껑을 덮지 않고 약간 약한 중불에서 3–5분 졸여, 표면에 붉은 기름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요. 피시 소스를 먼저 더하면 짜기만 하니, 먼저 수분을 날리고 마지막에 염분을 조절해 주세요.
너무 매워요
설탕을 늘리기만 해서는 매운맛이 사라지지 않아요. 코코넛 밀크 100ml, 물 50ml, 피시 소스 1작은술을 더하고 약간 약한 중불에서 3분 끓여 전체를 어우러지게 해요. 다음에는 페이스트를 35g으로 하고 고추는 식탁에서 더하는 형태로 하면 실패하기 어려워요.
가지가 검게 무너져요
가지를 너무 작게 썰었거나 처음부터 오래 끓인 거예요. 3cm 크기로 어슷하게 썰고 닭고기가 익은 뒤에 넣어요. 일반 가지는 태국 가지보다 부드럽고 국물을 빨아들이기 쉬우니, 껍질에 윤이 나고 가운데가 부드러워지기 시작한 시점에 멈추면 색도 식감도 남아요.
보관과 다음 날 먹는 법, FAQ
깽펫은 다음 날에도 맛있는 요리이지만, 밥과 함께 보관하면 수분을 빨아들여 무거워져요. 카레, 밥, 허브를 나누기만 해도 데웠을 때의 향이 달라져요.

카레는 한 김 식힌 뒤 깨끗한 보관 용기에 담아 냉장으로 2일 안에 먹어요. 데울 때는 약불에서 5–7분, 냄비 바닥을 긁듯이 저으며 세게 끓이지 않아요. 전자레인지라면 600W로 2분 데우고 한 번 섞은 뒤 1분 더 데워요. 닭고기 가운데까지 뜨거워지고 표면에 붉은 기름이 돌아오면 먹을 수 있어요.
냉동할 때는 카레만 2–3주까지. 가지는 해동하면 물러지니, 냉동할 거라면 죽순이나 두툼한 유부를 많이 넣는 편이 식감이 남아요. 바질은 냉동하지 말고 데운 뒤에 더해요.
아이나 매운 것을 못 먹는 가족에게는 어떻게 하나요?
페이스트를 25g으로 줄이고 코코넛 밀크를 500ml로 늘려요. 어른은 식탁에서 고추나 피시 소스를 더하는 형태로 하면 같은 냄비에서 조절할 수 있어요. 매운맛을 누그러뜨리려고 설탕을 너무 늘리면 단 카레가 되니, 코코넛 밀크로 묽히는 편이 자연스러워요.
그린 커리 페이스트로 만들어도 되나요?
만들 수는 있지만 요리 이름으로는 그린 커리(일본어)에 가까워져요. 청고추, 바질, 카피르 라임의 향이 앞에 나와서 붉은 고추의 둥근 고소함과는 다른 요리예요. 붉은 카레로 만드는 날에는 레드 커리 페이스트를 써 주세요.
단립종 쌀도 어울리나요?
어울려요. 단립종 쌀은 끈기가 있으니 카레를 적게 얹으면 먹기 편해요. 태국 쌀을 쓰면 향이 가볍고 매운맛과 코코넛 기름이 풀리기 쉬워서, 주말에 본고장에 가깝게 하고 싶은 날에는 재스민 라이스가 어울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