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의 열을 머금은 불구르가 붉은 메제가 된다
프라이팬에 양파와 붉은 파프리카를 볶고 토마토 페이스트를 푼 뜨거운 물을 부으면 냄비 안이 붉은 주황색으로 바뀌어요. 그 소스를 고운 불구르에 먹이고 식은 뒤에 허브와 레몬을 섞는 것이 이치예요. 알갱이 하나하나에 토마토의 감칠맛이 들어가고 파슬리와 쪽파는 끝까지 푸른 향을 남겨요.

이치는 영어로 Eetch, Eech, Itch 등 표기가 흔들리는 아르메니아 요리예요. 불구르를 쓰기 때문에 레바논의 타불레와 닮았지만, 타불레가 파슬리를 주인공으로 하는 데 비해 이치는 곡물의 양이 많고 토마토의 색과 부드러운 알갱이를 중심으로 구성해요. 먹는 온도도 하나로 정해져 있지 않아요. 따뜻하게 내는 집도 있고 냉장고에서 차게 해 메제 접시로 내는 집도 있어요.
집에서 어려운 것은 재료의 수가 아니라 불구르 알갱이와 수분을 맞추는 일이에요. 고운 것이라면 뜨거운 소스를 먹이고 20분쯤 두면 부드러워지지만, 굵게 빻은 것은 흡수 속도도 남는 씹는 맛도 달라요. 같은 '불구르'라고 적힌 봉지를 사도 알갱이 크기를 보지 않고 물만 맞추면 질척하거나 심이 남아요.
Armenian Institute가 소개하는 가정 버전에는 고운 불구르, 토마토 페이스트, 붉은 파프리카와 초록 파프리카, 양파, 파슬리, 쪽파, 레몬이 들어가고, 채소의 절반을 볶고 나머지를 생으로 섞는 흐름이 나와요. 이 두 가지 온도를 한 접시에 겹치면 소스의 깊이와 채소의 아삭함을 함께 살릴 수 있어요.
이치는 Eetch, Eech, Itch, Metch 등 여러 영문 표기로 소개돼요. 이 글에서는 Eetch를 써요. 고기를 쓰지 않는 구성이 많고 금식 기간의 레시피로 소개되기도 하지만, 종교적인 요리로 하나로 고정하지 않고 가정의 메제나 가벼운 식사로 다뤄요.
재료|고운 불구르를 붉은 소스로 불린다

6인분의 곁들임, 또는 상추에 싸 먹는 가벼운 점심으로서의 분량이에요. 이치는 재료를 늘리는 요리라기보다 불구르에 먹이는 액체와 나중에 더하는 생채소의 비율로 식감을 조절해요.
불구르는 '고운 것'인지 확인한다
이 레시피는 Armenian Institute의 소개에 있는 fine bulgur 불리는 법을 기준으로 해요. 봉지 표시가 '불구르', '빻은 밀'뿐이라면 알갱이를 손가락으로 집어 확인하세요. 쌀알보다 고운, 쿠스쿠스에 가까운 알갱이면 이번 수분으로 불리기 쉽고, 알갱이가 3~5mm쯤 보이는 것은 굵은 쪽이에요. 살 때 볼 만한 것은 일반 밀가루가 아니라 알갱이 상태가 표시된 불구르예요. 고운 것이라는 표기가 보이지 않으면 뒤에 나오는 굵은 불구르 갈래에 맞춰 수분을 조절하세요.
석류 당밀과 수맥은 신맛의 역할이 다르다
석류 당밀은 과일을 졸인 농축 조미료로, 레몬의 날카로운 신맛과는 다른 어둡고 둥근 신맛을 더해요. 수맥은 건조한 붉은 신맛으로 씹은 뒤에 향이 남아요. 둘 다 넣으면 맛이 입체적이 되지만, 처음에는 석류 당밀 1큰술, 수맥 1작은술로 시작하고 식은 뒤에 나머지를 더해도 좋아요.
수맥은 레몬즙만으로는 내기 어려운 건조한 신맛과 붉은 향을 남겨요. 레몬만의 밝은 신맛으로 충분하다면 처음에는 사지 않고 만들어 보고, 다음에 같은 요리를 만들 때 향의 차이를 비교해도 좋아요.
불구르는 밀이에요. 밀 알레르기가 있거나 글루텐을 피해야 하는 경우에는 같은 요리로 다루지 말고 퀴노아나 쌀로 다른 토마토 샐러드로 바꿔 만드세요. 붉은 파프리카 페이스트와 조미료에도 밀·대두 등이 들어 있는 제품이 있으니 살 때 원재료 표시를 확인하세요.
만드는 법|뜨거운 토마토 소스로 알갱이를 불린다
이치는 채소를 전부 볶아 끓이는 요리가 아니에요. 절반의 채소로 뜨거운 소스를 만들고 나머지를 생으로 섞어 부드러운 불구르 속에 작은 씹는 맛을 남겨요.
알갱이 크기와 신맛은 맛을 보고 정한다

이치의 식감은 볶는 법보다 불구르를 불리는 순간에 정해져요. 고운 알갱이가 뜨거운 소스를 머금고 허브를 섞어도 숟가락에서 무너져 내리지 않는 정도가 차가운 메제로 만들 때의 착지점이에요.
Milk Street의 이치는 굵은 불구르를 쓰는 구성이고, 고운 것·중간 것과는 흡수 속도가 다르다고 설명해요. 굵은 것을 쓸 때는 끓는 물을 400ml로 늘려 30분 덮어 두고, 아직 단단하면 끓는 물을 1큰술씩 더해 5분 둬요. 알갱이가 완전히 무너질 때까지 끓이는 것이 아니라 중심에 작은 씹는 맛이 남은 곳에서 멈추세요.
뜨거운 소스 단계에서 레몬이나 석류 당밀을 늘리면 식은 뒤에 신맛이 강하게 나와요. 레몬즙은 2큰술, 석류 당밀은 1큰술부터 섞고 냉장고에서 15분 두었다가 나머지를 더하면 조절하기 쉬워요. 단 석류 시럽밖에 없다면 설탕을 더하지 말고 레몬즙과 수맥으로 윤곽을 만드세요.
섞은 직후 알갱이가 무거워 보여도 식을 때까지의 20~30분 동안 수분이 가라앉기도 해요. 식었는데도 접시 바닥에 액체가 고이면 고운 불구르를 1큰술씩 더해 10분 둬요. 한꺼번에 많은 불구르를 더하면 짠맛과 신맛이 옅어지니 조금씩 상태를 보세요.
양파와 피망을 전부 볶으면 단맛은 나지만 차가운 메제로는 단조로워요. 절반을 소스로 하고 절반을 마지막에 더하는 것은 Armenian Institute의 소개 레시피에서도 보이는 구성이에요. 생채소의 모서리가 신경 쓰일 때도 소금에 주무르기보다 5mm 크기를 지키는 편이 물이 덜 나와요.
석류 당밀은 사 놓고 이치에만 쓰다 보면 다 쓰지 못하는 조미료예요. 닭고기 조림, 구운 가지, 요구르트 소스에 작은술 단위로 돌려 쓸 수 있을지를 생각해 용량을 고르세요.
잎에 싸 먹을까, 따뜻한 접시로 할까

상추에 싸는 메제
로메인 상추를 한 장씩 떼어 가운데에 이치를 2큰술쯤 올려요. 잎을 반으로 접으면 숟가락 없이 먹을 수 있어요. Armenian Institute의 소개에서도 둥글게 담은 이치 둘레에 상추, 방울토마토, 올리브를 배치해요. 물기가 많으면 잎이 찢어지니 냉장고에서 꺼내자마자가 아니라 담기 전에 한 번만 바닥에서부터 뒤집어 주세요.
따뜻한 곁들임으로 내기
식히기 전의 이치를 냄비의 여열이 남아 있을 때 작은 접시에 덜어요. 온도는 뜨거운 것이 아니라 김이 조금 오르는 40~50℃ 정도가 먹기 좋아요. 차가운 메제보다 허브의 푸름은 약해지지만 토마토와 파프리카의 단맛이 앞서서 구운 닭고기나 생선 옆에 놓기 좋아요.
레몬을 강하게 해서 여름 맛으로
석류 당밀을 1큰술로 줄이고 레몬즙을 3큰술 그대로 두면 신맛의 윤곽이 밝아져요. 토마토가 단 철에는 방울토마토 100g을 다져 섞지 말고 먹기 직전에 올리면 이치의 붉은 알갱이가 물러지지 않아요.
콩과 페타 치즈로 한 접시 만들기
삶은 강낭콩 120g 또는 병아리콩 150g을 식혀서 더하면 가벼운 곁들임이 점심용이 돼요. 페타 치즈 60g을 부숴 곁들이는 방법도 있지만, 이것은 기본 이치에 반드시 들어가는 재료가 아니라 식사량을 늘리는 응용이에요. 짠맛이 있는 치즈를 더할 때는 재료표의 소금을 4g으로 줄여요.
굵게 으깬 붉은 파프리카 쓰기
붉은 파프리카와 마늘을 너무 곱게 갈지 않고 거친 페이스트로 소스에 섞으면 알갱이 사이에 작은 향의 덩어리가 남아요. 한 번만 만든다면 칼로 충분해요.
아르메니아의 식탁에서 붉은 불구르는 어떻게 놓일까

이치를 타불레의 붉은 버전으로만 보면 요리가 놓이는 자리가 잘 보이지 않아요. 타불레는 파슬리와 민트를 잘게 썰고 곡물을 소량 곁들이는 구성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치는 불구르에 토마토 소스를 먹여 숟가락으로 뜰 수 있는 밀도로 만들어요. Jerusalem Story의 요리 용어집은 이치를 토마토 바탕으로 불린 불구르에 양파, 마늘, 파슬리, 레몬을 합친 요리로 설명하고 따뜻하게도 차게도 낼 수 있는 메제라고 해요.
이름의 철자에도 이동해 온 요리다운 흔들림이 있어요. Eetch, Eech, Itch, Metch는 서로 다른 요리라기보다 영어권의 가정이나 자료가 각자 들은 소리를 적은 것이에요. 레시피 사이트에 따라 Armenian tabbouleh나 red tabouli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겉모습이 비슷하다고 레바논 타불레와 같은 배합으로 하면 파슬리가 많고 불구르가 적은 다른 접시가 돼요.
Armenian Institute가 게재한 레시피는 Alice Antreassian의 『The 40 Days of Lent: Selected Armenian Recipes』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에요. 고운 불구르에 토마토 페이스트, 끓는 물, 수맥을 합치고 양파와 파프리카의 절반을 볶은 뒤 나머지를 생으로 더하고, 마지막에 상추와 방울토마토, 올리브로 둥글게 담아요. 이 담음새는 요리를 큰 그릇에서 덜어 먹을 뿐 아니라 잎에 조금씩 올려 손으로 먹는 시간을 만들어요.
한편 Milk Street의 레시피는 굵은 불구르를 쓰고 토마토 페이스트와 물의 혼합액으로 알갱이를 불리는 점을 강조해요. 고운 것·중간 것과 굵은 것은 액체를 빨아들이는 방식과 씹는 맛이 다르므로 어느 한쪽을 유일한 정통형으로 정하기보다 알갱이에 맞춰 수분을 바꾸는 편이 가정에서는 다루기 쉬워요. 이 글의 재료표는 고운 것 버전, 조리 요령에서는 굵은 것 버전을 보인 것은 그 차이를 숨기지 않기 위해서예요.
이치는 아르메니아 본국뿐 아니라 이주한 곳의 식탁에서도 메제나 가벼운 식사로 만들어져 왔어요. Jerusalem Story의 용어집은 팔레스타인계 아르메니아인의 가정을 포함한 디아스포라에서 따뜻하게도 차게도 내는 요리로 소개해요. 그래서 붉은 파프리카를 늘리거나 허브의 양을 바꾸거나 빵이나 상추를 곁들이는 차이를 봐도 다른 요리로 나누기보다 식재료를 구하는 곳과 식탁에서의 역할의 차이로 읽는 편이 자연스러워요.
그래서 집에서 만들 때 지켜야 할 것은 토마토의 색을 진하게 하는 것만이 아니에요. 곡물이 주인공일 것, 소스의 신맛을 레몬만으로 뾰족하게 하지 않을 것, 허브를 너무 가열하지 않을 것, 잎이나 빵에 조금씩 올릴 수 있는 밀도로 만들 것이에요. 닭고기나 양고기를 곁들이면 잔치 접시로 넓힐 수 있지만, 이치 자체는 고기의 곁들임으로 한정되지 않아요. 아르메니아의 가파마(일본어) 같은 축제 요리와도, 카르시 호로바츠 같은 숯불 요리와도 나란히 놓을 수 있어요. 곡물 메제로 보면 레바논의 타불레와의 차이도 재료표가 아니라 식탁에서의 역할로 알 수 있어요.
보관과 자주 묻는 질문|식으면 신맛과 알갱이가 가라앉는다

뜨거운 소스로 불린 이치는 실온에서 15분 식힌 뒤 얕은 보관 용기에 펼쳐 냉장고에 넣어요. 두꺼운 볼에 오래 두지 말고 용기의 높이를 3cm 정도로 하면 중심까지 식기 쉬워요. 일본 후생노동성도 남은 음식은 빨리 식도록 얕은 용기에 나눠 담고 실온에 오래 두지 말라고 안내해요.
냉장한 이치는 다음 날 신맛과 알갱이가 가라앉지만, 생채소가 들어 있으므로 가정에서 만드는 양으로는 2일 안에 먹어 치우는 것이 다루기 쉬워요. 상추는 별도 용기에 담아 물기를 닦고 먹기 직전에 곁들이세요. 냉동하면 불구르와 생채소의 식감이 무너지기 쉬우니, 냉동 보관보다 분량을 절반으로 줄여 만드는 편이 다루기 쉬운 요리예요.
Q1. 고운 것이 아니라 굵은 불구르로도 만들 수 있나요?
만들 수 있지만 재료표의 360ml로는 모자랄 수 있어요. 끓는 물을 400ml로 하고 뚜껑을 덮은 채 30분 둔 뒤 알갱이를 확인하세요. 중심이 단단하면 끓는 물을 1큰술씩 더해 5분 두고, 액체가 남으면 고운 불구르를 1큰술씩 더해요. 굵은 버전은 알갱이의 씹는 맛이 강해서 차가운 샐러드보다 따뜻한 곁들임에 어울려요.
Q2. 석류 당밀이 없으면 무엇으로 대신할 수 있나요?
2큰술 대신 레몬즙 1큰술, 토마토 페이스트 1작은술, 설탕 1/2 작은술을 섞는 가정 버전을 쓸 수 있어요. 신맛과 색은 가까워지지만 석류의 과일감과 어두운 단맛은 약해져요. 이치를 여러 번 만들 예정이라면 레몬만으로 만든 접시를 한 번 먹어 본 뒤에 구입을 정해도 늦지 않아요.
Q3. 따뜻하게 먹어도 괜찮나요?
괜찮아요. 고운 불구르가 20분에 불고 허브와 생채소를 섞은 직후라면 40~50℃ 정도의 따뜻한 곁들임으로 낼 수 있어요. 차가운 메제로 하면 신맛이 둥글어지고, 따뜻한 채라면 토마토와 파프리카의 단맛이 앞서요. 같은 냄비를 두 가지 온도로 낼 때는 상추를 곁들일 분량을 먼저 덜어 두세요.
Q4. 밀을 먹을 수 없는 경우는?
불구르를 퀴노아나 쌀로 바꾸는 방법은 있지만, 흡수와 식감이 달라지므로 이치가 아니라 붉은 곡물 샐러드로 생각하세요. 글루텐 프리 표시가 필요한 사람은 조미료의 원재료와 제조 라인도 확인하고 같은 도마나 볼을 돌려 쓰지 마세요.
Q5. 너무 시거나 질척할 때는?
너무 시다면 끓는 물 1큰술과 올리브유 1작은술을 섞어 짠맛을 확인한 뒤 조금씩 더해요. 질척하다면 먼저 냉장고에서 15분 두고 판단하고, 그래도 바닥에 액체가 고이면 고운 불구르를 1큰술씩 더해요. 설탕만 늘리면 토마토의 맛이 흐려지므로 소금과 기름이 부족하지 않은지도 함께 보세요.
참고 문헌
- Armenian Institute, “Eetch” — 고운 불구르, 토마토 페이스트, 수맥, 채소의 절반을 볶는 공정, 상추·토마토·올리브 담음새를 확인. https://www.armenianinstitute.org.uk/food/eetch (참조일·확인일: 2026-08-24 JST)
- Christopher Kimball’s Milk Street, “Bulgur-Tomato Salad with Herbs and Pomegranate Molasses (Eetch)” — 곡물 중심 요리인 점, 토마토 페이스트와 물로 불리는 방식, 굵은 것과 고운 것의 흡수 차이를 확인. https://prod.177milkstreet.com/recipes/bulgur-tomato-salad-with-herbs-and-pomegranate-molasses-eetch (참조일·확인일: 2026-08-24 JST)
- Jerusalem Story, “Eetch” — 토마토가 들어간 불구르 샐러드의 식감, 따뜻하게·차게 내는 방식, 메제, 아르메니아계 디아스포라에서의 위치를 확인. https://www.jerusalemstory.com/en/lexicon/eetch (참조일·확인일: 2026-08-24 JST)
- 일본 후생노동성「家庭での食中毒予防」 — 남은 음식을 얕은 용기에 나눠 빨리 식히고 실온에 오래 두지 않는 것을 확인. https://www.mhlw.go.jp/stf/seisakunitsuite/bunya/kenkou_iryou/shokuhin/syokuchu/01_00008.html (참조일·확인일: 2026-08-24 JS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