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궁의 향으로 채소가 밥반찬이 돼요
토마토를 으깨며 볶다가 바궁(bagoong)을 한 숟갈 넣으면 부엌 공기가 단숨에 필리핀 쪽으로 기울어요. 된장과도 생선 소스와도 다른, 발효된 바다의 향이에요. 그 위에 단호박, 가지, 오크라, 여주, 껍질콩을 겹쳐 넣고 적은 수분으로 쪄 내듯 조려요.

피낙벳(pinakbet/pakbet)은 필리핀 북부 일로코스(Ilocos) 지방과 함께 이야기되는 경우가 많은 채소조림이에요. 이름은 '주름지다', '쪼그라들다'와 관련된 일로카노어에서 왔다고 설명되며, 채소를 적은 국물로 쪄 내듯 조려 모서리가 살짝 숨이 죽은 상태로 먹어요. '채소를 색 곱고 아삭하게' 마무리하려고 하면 오히려 피낙벳다움에서 멀어져요.
그렇다고 흐물흐물하게 뭉개는 요리도 아니에요. 단호박은 모서리가 살짝 둥글어질 정도, 가지는 부드럽게, 오크라는 초록을 남기고, 여주는 쓴맛이 너무 남지 않게. 거기에 바궁의 짠맛이 어우러져 흰밥을 부르는 요리가 돼요. 아도보(일본어)나 시니강(일본어)이 신맛과 조림의 입문이라면, 피낙벳은 필리핀식 채소 쓰임새의 입문이에요.
영어권에서는 pinakbet과 pakbet 두 가지가 모두 보여요. 이 글에서는 더 흔하고 검색하기 쉬운 '피낙벳'으로 통일해요.
피낙벳은 일로코스의 채소와 발효 조미료로 만드는 냄비 요리
필리핀 정부 기관인 National Nutrition Council은 피낙벳을 필리핀에서 자주 먹는 채소 요리로 소개하며 여주, 호박, 가지, 줄콩, 오크라 등을 들어요. 레시피 사이트를 보면 일로코스식은 bagoong isda(생선 발효 조미료)를 쓴다는 설명이 많고, 가정용으로는 bagoong alamang(새우 페이스트)이나 생선 소스로 맞추는 방법도 보여요.
중요한 건 채소의 정답을 하나로 고정하지 않는 거예요. 현지에서도 집집마다 돼지고기, 말린 새우, 생선, 바그넷(bagnet), 토마토의 양이 달라요. 긴 sitaw(줄콩) 대신 껍질콩, calabaza 대신 단호박, ampalaya 대신 여주를 쓰면 장보기가 현실적이에요.
| 피낙벳의 기둥 | 현지에서 흔한 형태 | 집에서 지킬 점 |
|---|---|---|
| 발효 조미료 | bagoong isda, bagoong alamang | 냄비의 짠맛은 여기서 만들어요. 너무 많이 넣지 말고 마지막에 조절해요 |
| 호박 | kalabasa | 너무 뭉개지지 않게 두껍게 썰어 먼저 넣어요 |
| 여주 | ampalaya | 너무 얇게 썰지 말고 소금을 배게 해 쓴맛을 다듬어요 |
| 가지와 오크라 | talong, okra | 후반에 넣어 부드러움과 채소의 존재감을 남겨요 |
| 적은 국물 | 채소의 수분으로 쪄 내듯 조림 | 물을 많이 넣지 않아요. 국물이 채소에 얽히는 요리예요 |
구하기 쉬운 채소로 만들 때 가장 고민되는 건 여주예요. 쓴맛을 모두 빼면 피낙벳다움이 옅어지고, 너무 두꺼우면 첫입에서 젓가락이 멈춰요. 이 글에서는 5mm 폭으로 썰어 소금 1/2작은술을 10분 배게 한 뒤 물기를 닦는 방법을 써요. 쓴맛은 남기면서도 아이나 여주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내기 쉬운 타협점이에요.
재료(4인분)

4인분이에요. 흰밥과 함께 먹는 주반찬에 가까운 분량이에요. 삼겹살은 향과 기름을 조금 더하는 역할이라 채소보다 튀지 않게 해요. 고기 없이 만드는 방법은 뒤의 자주 묻는 질문에 정리했어요.
이 요리에는 돼지고기, 어패류, 갑각류가 들어가요. 바궁 알라망은 새우로 만든 제품이 많으니 갑각류 알레르기가 있다면 쓰지 마세요. 피시소스도 제품에 따라 어패류 유래이므로 식탁에 내기 전에 원재료를 확인해 주세요.
장볼 때 무엇을 챙길까

피낙벳의 장보기는 채소보다 발효 조미료에서 차이가 나요. 단호박, 가지, 오크라, 껍질콩, 여주는 일반 마트에서 갖출 수 있어요. 따로 찾아볼 가치가 있는 건 바궁이에요. 일반 된장이나 간장만으로는 피낙벳 특유의 바다 발효 향에 가까워지지 않아요.
| 장보기 우선순위 | 따로 찾아볼 재료 | 요리에서의 역할 | 없을 때 |
|---|---|---|---|
| 최우선 | 바궁 알라망 | 짠맛, 감칠맛, 발효 향을 만들어요 | 된장만 쓰면 다른 요리에 가까워져요 |
| 높음 | 파티스, 피시소스 | 마지막 짠맛 조절 | 태국 피시소스로 대신하기 쉬워요 |
| 중간 | 말린 새우 가루 | 고기나 생선이 없는 날 바다의 감칠맛을 조금 더해요 | 말린 표고 가루로 바꾸면 향은 다른 방향이 돼요 |
| 낮음 | 줄콩 | 현지 모양에 가까운 긴 콩 | 껍질콩으로 충분해요 |
| 낮음 | 바그넷 | 일로코스다운 돼지고기 튀김 | 처음엔 삼겹살이면 돼요 |
바궁은 카레카레에서도 종지에 곁들이는 조미료예요. 한 병 있으면 필리핀 요리 식탁이 꽤 넓어져요. 향이 강하니 처음에는 1과 1/2큰술까지로 줄이고, 모자란 만큼은 식탁에서 더하는 편이 실패하지 않아요.
파티스는 마지막에 짠맛을 정하는 필리핀식 생선 소스예요. 태국 피시소스로 대신할 수 있지만, 필리핀 요리를 계속 만들 거라면 파티스 작은 병을 두면 시니강(일본어)이나 아로스 칼도에도 쓸 수 있어요.
고기를 빼는 날이나 바궁을 줄이고 싶은 날에는 말린 새우 가루를 1작은술만 더하면 채소의 단맛이 살아나요. 갑각류를 피하는 식탁이라면 쓰지 말고 말린 표고 가루 1작은술로 바꿔 주세요.
만드는 법
피낙벳은 볶음이 아니라 겹쳐서 쪄 내듯 조리는 요리예요. 잘 익지 않는 단호박과 껍질콩을 먼저 넣고, 무르기 쉬운 가지, 오크라, 여주는 후반으로 돌려요. 냄비 안을 여러 번 휘저으면 단호박이 부서져 전체가 걸쭉해져요.
단호박과 껍질콩처럼 잘 익지 않는 채소를 아래에, 가지와 오크라, 여주를 위에 겹쳐요. 섞는 횟수를 줄일수록 채소의 모양과 색이 예쁘게 남아요.
실패하기 쉬운 포인트

피낙벳의 실패는 대개 물과 섞는 방법에서 나와요. 채소가 탈까 봐 물을 많이 넣으면 채소국이 되어 바궁의 향이 옅어져요. 반대로 센 불로 수분을 날리려 하면 냄비 바닥만 타고 단호박은 단단한 채로 남아요.
| 실패 | 원인 | 고치는 법 |
|---|---|---|
| 물이 많아요 | 물을 많이 넣었거나 뚜껑을 오래 덮었어요 | 뚜껑을 열고 약불에서 5분 더 졸여요 |
| 단호박이 부서져요 | 너무 섞었거나 작게 썰었어요 | 2.5cm 크기로 썰고 뒤집는 횟수를 줄여요 |
| 여주가 너무 써요 | 두껍게 썰었거나 소금을 배게 하지 않았어요 | 5mm 폭, 소금 1/2작은술, 10분 뒤 물기를 닦아요 |
| 짜요 | 바궁의 염도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더했어요 | 물 50ml와 토마토 1/2개를 더해 약불에서 5분 조려요 |
| 채소에서 풋내가 나요 | 쪄 내듯 조리는 시간이 짧았어요 | 중약불에서 3분 더, 뚜껑의 물방울이 떨어지는 상태를 유지해요 |
| 기름져요 | 삼겹살 기름이 많아요 | 2단계에서 기름을 2작은술 정도 닦아 낸 뒤 채소를 넣어요 |
바궁은 제품 차이가 큰 조미료예요. 같은 1큰술이라도 단 타입, 아주 짠 타입, 새우 향이 진한 타입에 따라 맛이 달라져요. 처음 쓰는 병이라면 2단계에서 1큰술만 넣고, 6단계에서 뜸을 들인 뒤 1작은술씩 더하는 편이 안전해요.
현지에서 먹는 법과 식단
피낙벳은 일로코스 지방의 요리로 퍼졌고, 지역에 따라 쓰는 발효 조미료가 달라요. 일로코스에서는 생선 발효 조미료를, 마닐라 주변의 타갈로그 지방에서는 새우로 만든 바궁을 쓰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일로코스식 식탁에서는 피낙벳에 바그넷 같은 돼지고기 튀김을 곁들이기도 해요. 집에서 매번 거기까지 준비할 필요는 없어요. 삼겹살을 조금 넣거나 옆에 생선구이를 두는 정도로도 한 상으로 충분히 정리돼요.
필리핀 요리로 식단을 짠다면, 새콤한 시니강(일본어)과 같은 날 내기보다 치킨 이나살(일본어)이나 토르탕 탈롱(일본어) 옆에 두는 편이 맛이 덜 부딪혀요. 피낙벳은 채소와 발효 짠맛, 이나살은 신맛과 숯불 향, 토르탕 탈롱은 달걀과 가지의 부드러움을 맡아요.
| 식단 | 어울리는 날 | 맞추는 법 |
|---|---|---|
| 피낙벳, 밥, 생선구이 | 평일 저녁 | 바궁을 줄이고 생선의 간을 보며 조절해요 |
| 피낙벳, 치킨 이나살, 밥 | 필리핀 요리를 넓혀 보는 날 | 피낙벳은 국물을 적게 해 닭의 신맛과 나눠요 |
| 피낙벳, 토르탕 탈롱, 밥 | 채소를 많이 쓰는 날 | 가지가 겹치니 피낙벳의 가지를 1개로 줄여요 |
| 피낙벳, 카레카레, 밥 | 바궁을 다 쓰고 싶은 날 | 둘 다 짠맛은 식탁에서 더하는 방식으로 해요 |
먹을 때는 접시 위에서 전부 섞지 않아요. 밥을 조금 떠서 피낙벳의 단호박이나 가지를 올리고, 바궁을 밥알 몇 알만큼만 더해요. 짠맛이 강한 조미료라 종지에서 조금씩 더해야 질리지 않고 먹을 수 있어요.
보관과 데우기
피낙벳은 채소의 수분이 많고 바궁과 돼지고기도 들어가니 냉장으로 다음 날까지를 기준으로 해요. 30분 안에 한 김 식혀 얕은 보관 용기에 펼쳐 냉장해 주세요. 단호박이 부서지기 쉬워서 깊은 용기에 눌러 담으면 식감이 떨어져요.
데울 때 냄비라면 1인분에 물 1큰술을 더해 약불에서 5분이에요. 전자레인지라면 내열 접시에 펼쳐 600W로 1분 30초 데우고, 위아래를 뒤집어 40초 더 데워요. 냉동은 추천하지 않아요. 가지와 오크라의 식감이 물러지고 여주의 쓴맛만 두드러지기 쉬워요.
자주 묻는 질문
바궁 없이 만들 수 있나요?
만들 수는 있지만 같은 맛은 아니에요. 피시소스 2작은술, 된장 1작은술, 간장 1작은술을 섞어 2단계에서 넣으면 짠맛과 감칠맛은 낼 수 있어요. 다만 새우나 생선의 발효 향은 약해져요. 피낙벳다움을 내고 싶다면 바궁을 작은 병으로 준비할 가치가 있어요.
bagoong isda와 bagoong alamang 중 어느 쪽이 좋나요?
일로코스식으로 하려면 생선으로 만든 bagoong isda가 자주 언급돼요. 구하기 쉬운 건 새우 페이스트인 bagoong alamang이에요. 이 글에서는 구하기 쉬운 쪽을 우선해 바궁 알라망을 써요. 염도와 단맛이 제품마다 다르니 처음에는 적게 넣고 식탁에서 더해요.
여주를 싫어하는 가족이 있어요
여주를 5mm 폭으로 썰어 소금 1/2작은술을 10분 배게 하고 물기를 닦는 방법을 써 주세요. 그래도 강하다면 여주를 80g으로 줄이고 단호박을 50g 늘려요. 완전히 빼면 요리의 윤곽이 너무 달아지니 처음에는 조금이라도 남기는 걸 추천해요.
고기 없이 만들려면 어떻게 하나요?
삼겹살을 빼고 기름을 1큰술로 늘려요. 2단계에서 양파, 마늘, 생강, 토마토, 바궁을 중불에서 5분 볶고, 말린 표고 가루 1작은술이나 다시마 육수 50ml를 더해요. 어패류를 피해야 한다면 바궁도 쓸 수 없으니, 된장과 간장으로 만드는 다른 채소조림으로 생각해 주세요.
단호박이 부서져요
작게 썰었거나 너무 섞었기 때문이에요. 2.5cm보다 작게 썰면 4단계에서 가운데까지 익기 전에 모서리가 무너져요. 냄비에 넣은 뒤에는 3단계에서 2번, 6단계에서 1번만 바닥부터 뒤집는 정도로 해요. 국물을 얽히게 하고 싶을 때는 냄비를 가볍게 흔드는 편이 모양을 지킬 수 있어요.
아이용으로 만들려면 어디를 바꾸나요?
바궁을 1큰술로 줄이고 여주를 80g으로 해요. 이 레시피는 원래 고추를 넣지 않으니, 매운맛을 원하는 어른만 식탁에서 라임이나 고추를 더해요. 짠맛이 모자랄 때도 냄비 전체에 더하기보다 어른 접시에만 바궁을 조금 더하는 편이 조절하기 쉬워요.
참고 자료
- National Nutrition Council, Knowing the health benefits of Pinakbet
- Wikipedia, Pinakbet
- Panlasang Pinoy, Pinakbet Recipe
- Kawaling Pinoy, Pinakb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