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 향이 올라오면 흰밥을 지을 신호예요
카레카레를 만드는 날에는 부엌 공기가 조금 달라져요. 소꼬리를 조용히 끓이는 동안 냄비에서 나는 향은 오히려 차분한 편이에요. 그런데 아나토로 색을 낸 국물에 무가당 땅콩버터와 볶은 쌀가루를 풀어 넣는 순간, 고소한 향이 한꺼번에 피어올라요.
필리핀 가정에서 카레카레를 먹을 때는 옆에 흰밥과 작은 접시의 바궁(bagoong)이 놓여요. 소스 자체는 놀랄 만큼 순한 맛이에요. 색은 진한데 맵지 않고, 짠맛도 강하지 않아요. 그래서 발효 새우 페이스트인 바궁을 조금씩 더해 밥에 비벼 가며 먹어요. 이 '냄비 안에서 너무 완성하지 않는' 먹는 법이 카레카레다움이에요.
카레카레(kare-kare / kari kari)는 소꼬리나 사태, 때로는 양을 오래 끓이고, 땅콩, 볶은 쌀, 아나토로 만든 소스를 합친 필리핀의 스튜 요리예요. '필리핀식 땅콩 스튜'로 소개되곤 하지만, 크림 스튜 같은 유제품의 둥근 맛이 아니라 견과류와 소고기 육수, 발효 조미료의 감칠맛으로 먹는 요리라고 생각하면 더 가까워요.
필리핀 요리 흐름에 놓고 보면 신맛이 있는 시니강(일본어)이나 간장과 식초로 조리는 아도보(일본어)와는 반대편에 있는 한 접시예요. 시지도, 맵지도, 달지도 않게. 부드러운 소스 안에 바궁의 짠맛을 직접 더해 가는 요리예요.
영어권의 필리핀 요리 자료에서는 kare-kare와 kari kari 두 가지 표기가 모두 보여요. 이 글에서는 '카레카레'로 통일해요. 카레 가루로 만드는 요리가 아니에요.
이 요리의 배경: 기원을 하나로 정하지 않는 편이 재미있어요

카레카레의 기원은 단정하지 않는 편이 정직해요. 자주 나오는 이야기로는 팜팡가 지방의 요리사가 만들었다는 설, 18세기 영국 점령기에 인도계 병사가 들여온 카레가 현지화했다는 설, 필리핀 남부와 말레이 세계의 카리 문화와 이어진다는 설이 있어요.
필리핀 정부 계열의 Philippine Information Agency는 2024년 KainCon에서 소개된 음식사 연구를 전하며, 카리카리를 '아나토 기름, 쌀가루, 땅콩으로 만든 주황빛 갈색 소스를 지닌 필리핀 요리'로 정리해요. 이 기사에서는 팜팡가 기원을 유일한 정답으로 다루지 않고, 1762년부터 1764년까지 영국의 마닐라 점령, 인도계 세포이(sepoy), 카리를 내던 작은 식당 카리한(karihan) 이야기 등 여러 층을 겹쳐 봐요.
Serious Eats의 레시피도 기원은 불확실하다고 전제한 뒤, 소꼬리나 양을 쓴다는 점, 채소가 지역과 계절에 따라 바뀐다는 점, 땅콩과 아나토가 필리핀 요리의 적응력을 보여 준다는 점에 주목해요. 여기가 집에서 만들 때의 중요한 힌트예요. 정답 재료를 모두 수입하기보다, 지켜야 할 축을 이해한 뒤 바꿔요.
| 카레카레의 축 | 지키는 이유 | 집에서의 현실적인 방법 |
|---|---|---|
| 소고기 육수 | 소스의 바탕. 물만 쓰면 밋밋해요 | 소꼬리, 사태, 소 힘줄을 조합해요 |
| 땅콩 | 요리 이름을 받치는 고소함 | 무가당 땅콩버터와 무염 땅콩 |
| 볶은 쌀 | 걸쭉함과 고소함 | 쌀가루를 마른 팬에 볶아요. 없으면 멥쌀가루 조금 |
| 아나토 | 주황색과 가벼운 흙 향 | 아나토 가루. 없으면 색은 파프리카로 보조 |
| 바궁 | 짠맛과 감칠맛을 식탁에서 더해요 | 새우젓, 생선 소스 조금, 된장 조금으로 대체 |
필리핀 식탁에서 카레카레는 특별한 날에도, 평소의 가족 밥상에도 등장해요. 다만 소꼬리를 부드럽게 하는 시간이 필요해서, 평일 퇴근 후 처음부터 만드는 요리는 아니에요. 주말에 끓여서 다음 날 소스를 데워 먹거나, 압력솥으로 밑준비를 줄여요. 이렇게 생각하면 집에서도 꽤 현실적이에요.
소스만 맛보면 조금 부족하게 느껴질 수 있어요. 바궁을 곁들여 밥과 먹는 것이 전제라서, 냄비 안에서 소금을 너무 정하지 않는 것이 요령이에요. 보통 조림 요리의 감각으로 처음부터 진하게 하면, 식탁에서 바궁을 더하는 즐거움이 사라져요.
재료 (4인분): 소꼬리를 축으로, 사태로 현실적으로 다가가기

4인분 큰 접시 요리로 만들어요. 소꼬리만으로 만들면 향과 젤라틴감이 강해지지만, 가격과 구하기 어려움의 문턱이 높아져요. 집에서는 소꼬리 500g에 사태 400g을 더하는 배합이 만들기 쉽고, 소스의 감칠맛도 충분히 나요.
고기와 육수
| 재료 | 분량 | 대체·메모 |
|---|---|---|
| 소꼬리 | 500g | 정육점, 냉동육 전문점, 온라인. 없으면 사태를 늘려요 |
| 사태 또는 소 앞다리 덩어리 | 400g | 소 힘줄 200g을 더하면 젤라틴감이 늘어요 |
| 양파 | 1개(약 200g) | 절반은 끓일 때, 절반은 소스용 |
| 마늘 | 6쪽 | 튜브형이면 3작은술. 다만 향은 생마늘이 나아요 |
| 물 | 1.8L | 도중에 줄면 더해요 |
| 월계수 잎 | 1장 | 생략 가능. 향을 너무 강하게 하지 않아요 |
| 식용유 | 2큰술 | 미강유도 가능 |
소스
| 재료 | 분량 | 대체·메모 |
|---|---|---|
| 무가당 땅콩버터 | 100g | 설탕이 든 것은 단맛이 나니 피해요 |
| 무염 볶은 땅콩 | 40g | 굵게 부숴요. 땅콩버터만 써도 돼요 |
| 쌀가루 | 3큰술(약 27g) | 멥쌀가루도 가능. 찹쌀가루는 끈기가 나서 맞지 않아요 |
| 아나토 가루 | 2작은술 | 아초테. 없으면 색만 파프리카 1작은술로 보조 |
| 남쁠라(생선 소스) | 2작은술 | 현지는 생선 소스예요. 너무 많이 넣지 않아요 |
| 후추 | 조금 | 마무리용 |
| 소금 | 1/2작은술부터 | 바궁을 곁들이니 적게 시작해요 |
채소와 곁들임
| 재료 | 분량 | 대체·메모 |
|---|---|---|
| 가지 | 3개(약 300g) | 필리핀의 긴 가지에 가까운 긴 가지가 잘 맞아요 |
| 껍질콩 | 120g | 롱빈 대신. 심을 떼요 |
| 청경채 | 2포기 | 현지의 페차이 대신. 소송채(고마쓰나)도 가능 |
| 바나나꽃 | 80g | 있으면. 없으면 빼도 돼요 |
| 바궁 알라망 | 4큰술 | 새우 발효 페이스트. 아래의 대체도 참고 |
| 흰밥 | 4공기 | 소스를 받으니 조금 되게 지은 밥이 잘 맞아요 |
이 요리에는 소고기, 땅콩, 해산물(생선 소스, 바궁)이 들어 있어요. 바궁은 새우로 만든 제품이 많으니 갑각류 알레르기가 있는 분은 쓰지 마세요. 생선 소스나 된장을 조금 써서 대체할 때는 향을 가깝게 하는 정도로만 하고, 같은 것으로 다루지 않는 편이 안전해요.
이 요리에 쓰는 재료와 도구
소꼬리는 동네 마트에 없는 경우가 많으니, 만들 날을 정하면 고기부터 확보해요. 사태를 섞으면 가격을 줄이기 쉽고, 끓이는 시간도 가늠하기 쉬워요.
아나토는 매운맛을 더하는 향신료가 아니라 카레카레의 주황색을 만드는 재료예요. 파프리카로 색만 비슷하게 할 수는 있지만, 현지의 향에 다가가고 싶다면 한 봉지 갖춰 둘 가치가 있어요.
무가당 땅콩버터는 설탕이나 꿀이 든 것을 피해 주세요. 단 제품을 쓰면 카레카레가 디저트 같은 향이 되고, 바궁과의 균형이 무너져요.
바궁은 호불호가 갈리는 조미료지만, 카레카레에서는 소스의 일부라기보다 먹기 직전에 짠맛을 더하는 짝꿍이에요. 작은 병이면 충분하니 필리핀 식료품점이나 온라인에서 찾아보세요.
스튜를 자주 만든다면 두꺼운 냄비나 압력솥이 있으면 편해요. 압력솥을 쓰더라도 소스는 마지막에 다른 냄비에서 농도를 보며 마무리해요.
만드는 법: 소고기 육수, 쌀가루, 채소를 따로 다듬기
카레카레는 모든 것을 한 냄비에 대충 끓이면 무거워져요. 고기는 고기대로 부드럽게 하고, 쌀가루는 마른 팬에 볶은 뒤 풀고, 채소는 색과 씹는 맛을 남겨요. 이 세 가지를 나누면 땅콩 소스가 진해도 먹다가 지치지 않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