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팬에 깍둑썰기한 초리소를 넣고 불에 올리면 몇 분 만에 기름이 붉게 물들고 파프리카와 마늘 향이 피어올라요. 거기에 양파와 피망, 소고기 다짐육을 넣고 풀어 주며 토마토로 졸이다가 마지막에 초록 올리브와 건포도, 케이퍼를 솔솔 넣어요. 흰밥에 듬뿍 얹고 황금색으로 구운 플랜틴(조리용 바나나)을 곁들이면 쿠바 식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한 접시예요. 짠맛과 단맛과 신맛이 한꺼번에 오는 다진 고기 조림, 피카디요 아 라 아바네라(Picadillo a la habanera)예요. 재료는 대부분 일반 마트에서 구할 수 있고 30분쯤이면 만들 수 있어요.
다진 고기를 아바나 스타일로 조려요

피카디요(picadillo)는 스페인어로 '잘게 썰다'를 뜻하는 동사 picar에서 온 말로 다진 고기나 간 고기를 쓴 요리를 가리켜요. '아 라 아바네라'는 '아바나 스타일'이라는 뜻이에요. 카리브해와 중남미 나라마다 저마다의 피카디요가 있고 다진 고기에 초록 올리브와 건포도, 향신료를 합친다는 뼈대를 나라마다 조금씩 바꿔 만들어요. 쿠바의 것은 올리브와 건포도의 달콤짭짤함 이 매력이에요.
미국 제임스 비어드 재단이 소개하는 레시피의 머리말은 "피카디요와 쿠바 및 중남미 요리의 관계는 라구와 이탈리아 요리의 관계와 같다"고 써요. 값싼 고기를 맛있게 다 먹기 위한 가정의 지혜에서 태어나 누구에게나 마음이 놓이는 단골 요리가 되었다는 거예요. 같은 머리말에는 흰밥에 얹고 달게 튀긴 플랜틴을 곁들이는 것이 최고라는 점에서는 모두의 의견이 일치한다 는 말도 있어요.
피카디요는 그 자체로 반찬이 되는 것 외에 다른 요리의 속 재료도 돼요. 쿠바에서는 엠파나다(속을 채운 튀김 파이)나 으깬 감자로 피카디요를 감싸 튀기는 '파파 레예나(papa rellena)'의 속으로도 친숙해요.
텔레비전 요리 방송과 쿠바의 부엌

피카디요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자주 이름이 오르는 사람이 니차 비야폴(Nitza Villapol)이에요. '쿠바의 줄리아 차일드'라 불린 요리 연구가로 1948년에 시작되었다고 하는 텔레비전 요리 방송 '코시나 알 미누토(Cocina al Minuto)'의 진행을 오래 맡았어요. 미국 공영 라디오 NPR의 기사는 방송 초기에 피카디요, 바카 프리타(소고기 바삭 구이), 아로스 콘 포요(닭고기 밥) 같은 쿠바의 고전 요리 를 많이 다뤘다고 전해요.
1959년 혁명 뒤 쿠바에서는 버터와 유지를 구하기 어려워졌고 돼지고기와 빵, 우유도 부족했어요. 비야폴은 그날 시장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을 쓰고 기름과 버터를 줄이며 값싼 부위의 고기로 만들 수 있게 레시피를 바꿔 갔어요. 적은 양의 다진 고기로 가족 모두에게 돌아가게 하는 피카디요는 그런 부엌에도 잘 어울리는 요리예요.
제임스 비어드 재단 레시피의 출처는 아냐 폰 브렘젠 등이 쓴 2017년 책 『Paladares』예요. '팔라다르(paladar)'는 쿠바에서 개인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을 뜻하고 이 책은 그런 가게의 요리를 소개해요.
집 주방에서 만들 때 지키고 싶은 것은 올리브, 건포도, 케이퍼 세 가지 를 갖추는 거예요. 모두 마트에서 구할 수 있는데 하나라도 빠지면 단맛, 짠맛, 신맛의 삼각형이 무너져 그저 미트소스에 가까워져요. 스페인산 가열용 초리소는 구하기 어려운 곳이 있는데, 못 구하면 굵게 간 소시지로 대신해도 붉은 기름의 향은 약해지지만 충분히 맛있게 만들 수 있어요.
재료(4인분)

제임스 비어드 재단이 소개하는 『Paladares』의 레시피를 바탕으로 미터법 계량으로 바꾼 배합이에요.
플랜틴은 수입 식료품점이나 온라인에서 구할 수 있는 조리용 바나나예요. 달게 구우려면 껍질이 노란색에서 거뭇해질 때까지 실온에서 후숙해서 써요. 초록일 때는 단맛이 적고 감자 같은 식감이 나요.
초리소나 소시지에는 제품에 따라 돼지고기, 유제품, 밀 등이 쓰여요. 식품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에게 낼 때는 원재료 표시를 확인하세요.
피카디요 만드는 법
밑준비에 약 15분, 피카디요를 조려 완성하기까지 약 25분, 플랜틴을 굽는 데 약 10분이 기준이에요. 플랜틴은 피카디요를 조리는 동안 다른 프라이팬에서 구우면 동시에 완성돼요.
익은 플랜틴은 당분이 많아 타기 쉽고 기름도 튀기 쉬워요. 불은 중불까지만 쓰고 뒤집을 때는 집게를 쓰세요.
달콤짭짤함을 정하는 소금과 건포도의 양

피카디요에서 가장 실패하기 쉬운 것이 간이에요. 초리소, 올리브, 케이퍼는 모두 짠맛이 강하고 제임스 비어드 재단의 레시피도 소금은 거의 필요 없다고 주의해요. 소금은 마지막에 맛을 본 뒤 라고 정해 두면 짜게 되는 실패는 거의 막을 수 있어요.
건포도의 단맛이 부담스러운 사람은 3큰술을 2큰술로 줄여도 돼요. 다만 0으로 만들면 쿠바다움이 단번에 옅어져요. 단맛을 줄이고 싶을 때도 조금은 남기기를 권해요.
올리브는 씨를 빼고 붉은 피멘토를 채운 초록색이 쿠바식의 정석이에요. 검은 올리브를 쓰면 향이 무거워지고 색도 칙칙해져요. 케이퍼는 식초에 절인 것을 물기를 빼고 쓰고 소금에 절인 것은 물에 씻은 뒤 넣으세요.
피카디요는 조린 뒤 잠시 두면 맛이 어우러져요. 시간이 있으면 불을 끄고 뚜껑을 덮어 10분쯤 쉬게 한 뒤 담으면 올리브와 건포도의 맛이 고기에 배요.
돼지고기로, 감자로 ─ 변주하는 법

고기는 소고기 다짐육에 한정하지 않고 돼지고기 다짐육이나 합이 다짐육으로도 만들 수 있어요. 돼지고기를 쓰면 단맛이 강해져 건포도와 궁합이 더 좋아져요. 중남미 나라마다 만드는 법이 달라서 케이퍼와 삶은 감자를 넣는 푸에르토리코식이나 삶은 달걀을 곁들이는 도미니카 공화국식 등이 있다고 소개돼요.
식탁에 맞추려면 피카디요를 밥 위에 얹고 달걀 프라이를 곁들이기만 해도 훌륭한 한 접시가 돼요. 쿠바 가정처럼 넉넉히 만들어 다음 날 엠파나다 속이나 크로켓 속으로 돌리는 것도 한 방법이에요. 한 번에 두 번 맛있는 것도 이 요리가 가정에서 오래 만들어진 이유 중 하나일 거예요.
먹는 법

접시에 흰밥을 담고 피카디요를 듬뿍 얹은 뒤 옆에 달게 구운 플랜틴을 나란히 놓아요. 미국의 쿠바 여행사 Insight Cuba의 레시피 소개는 흰밥 외에 토스토네스(초록 플랜틴 튀김)와 검은콩 밥을 곁들임으로 꼽아요. 검은콩 조림을 곁들이면 쿠바 식당의 정식에 가까운 모양이 돼요.
같은 쿠바의 고기 요리라면 소고기를 찢어 토마토에 끓이는 로파 비에하도 추천해요. 플랜틴을 더 즐기고 싶다면 카리브의 푸에르토리코에서 으깬 플랜틴을 주인공으로 삼는 모퐁고와 먹어 비교해 보세요. 같은 조리용 바나나라도 익은 정도와 조리법에 따라 전혀 다른 맛이 돼요.
자주 묻는 질문

초리소가 없어도 만들 수 있나요?
만들 수 있어요. 초리소를 빼는 경우에는 올리브유를 1큰술로 늘리고 양파와 피망을 볶을 때 파프리카 가루를 1/2작은술쯤 더하면 붉은색과 향을 조금 보충할 수 있어요.
플랜틴 대신 보통 바나나를 쓸 수 있나요?
생으로 먹는 바나나는 부드러워서 구우면 쉽게 뭉개지니 권하지 않아요. 플랜틴을 구하지 못하면 곁들임을 빼고 흰밥만 먹거나 검은콩 조림을 곁들이세요.
냉동할 수 있나요?
조린 피카디요는 식힌 뒤 밀폐 용기에 담아 냉동할 수 있어요. 보관 기간의 분명한 기준은 제시할 수 없으니 되도록 빨리 드세요. 다시 데울 때는 속까지 뜨거워질 때까지 가열하세요.
맵게 할 수 있나요?
쿠바의 피카디요는 맵지 않은 요리예요. 맵게 하고 싶다면 식탁에서 고추 소스를 뿌려 조절하세요.
아이용으로 만들 수 있나요?
맵지 않아서 그대로 아이도 먹기 쉬운 맛이에요. 올리브와 케이퍼의 짠맛이 신경 쓰이면 양을 절반으로 줄이고 건포도를 조금 더 많이 넣으면 먹기 편해요.
참고 문헌
- James Beard Foundation, “Picadillo a la Habanera,” adapted from Anya Von Bremzen and Megan Fawn Schlow, Paladares (Abrams Books, 2017). 참조·확인일: 2026년 10월 22일. https://archive.jamesbeard.org/recipes/picadillo-a-la-habanera
- Suzanne Cope, “Nitza Villapol: The Woman Who Taught Cubans To Cook With Just About Anything,” NPR(KPBS 전재), 2016년 6월 16일 공개. 참조·확인일: 2026년 10월 22일. https://www.kpbs.org/news/2016/06/16/nitza-villapol-the-woman-who-taught-cubans-to
- Insight Cuba, “Recipe of the Week: Picadillo a la Habanera,” 2014년 2월 28일 공개. 참조·확인일: 2026년 10월 22일. https://insightcuba.com/node/940
- Strong Sense of Place, “Cuban Picadillo with Plantains Inspired by Leonardo Padura's Novel 'Havana Fever',” 2020년 4월 29일 공개. 참조·확인일: 2026년 10월 22일. https://strongsenseofplace.com/food_and_fiction/2020/04/29/cuban-picadillo-with-plantains-inspired-by-leonardo-padura-novel-havana-fev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