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일강변에서 이어져 온 '발효 주식'
수단의 수도 하르툼은 백나일강과 청나일강이 합류하는 곳에 있습니다. 이 나라에서 아침, 점심, 저녁 모든 식탁의 중심에 앉아 있는 요리가 있습니다. 키스라(Kisra / Kissra / كسرة) 입니다.
키스라는 수수 가루를 물에 풀어 하룻밤 이상 발효시킨 뒤 얇게 부친 크레이프 모양의 빵입니다. 겉모습은 프랑스의 크레이프나 에티오피아의 인제라와 비슷하지만, 맛은 전혀 다릅니다. 수수 특유의 곡물 단맛과 젖산 발효의 은은한 신맛이 겹쳐, 그대로 먹어도 깊이 있는 맛이 퍼집니다.
수단의 발효 식품 연구자인 하미드 디라르(Hamid Dirar) 교수(하르툼 대학)는 저서 『The Indigenous Fermented Foods of the Sudan』(1993년)에서 수단의 전통 발효 식품을 체계적으로 정리했습니다. 고고학 조사에서도 수수의 재배와 발효 이용이 나일강 유역에서 오랜 역사를 가졌음이 시사됩니다.
아랍어로 '부수다·찢다'를 뜻하는 동사에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수단에서는 요리마다 키스라를 찢어 손으로 먹기 때문에 이 이름이 붙었습니다. 에티오피아의 인제라가 테프 가루를 쓰는 데 비해, 키스라는 수수 가루를 씁니다. 이웃 나라에서도 비슷한 발효 크레이프를 널리 먹습니다.
일본어로 '키스라', '수단 요리'를 검색해도 제대로 된 레시피는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영어권에서는 'Sudanese kisra'라는 이름으로 요리 블로거와 음식 문화 연구자가 자세한 레시피와 문화적 배경을 공개하고 있지만, 그 정보는 거의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에티오피아의 인제라나 모로코의 타진(일본어)처럼 아프리카의 발효 식품이 주목받는 지금이야말로 키스라를 알 절호의 기회입니다. 이 글에서는 구하기 쉬운 재료로 키스라를 재현해 수단의 식탁을 체험하는 방법을 차근차근 설명합니다.
재료(4인분·약 12장)
수수 가루는 '소르검 가루', '밀로 가루', '화이트 소르검 가루'라는 이름으로 자연식품점, 제과 재료점, 온라인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 제과용 '화이트 소르검 가루'가 가장 많이 유통됩니다. 찾지 못하면 통밀가루 200g + 메밀가루 100g 조합으로 수수 특유의 곡물감과 가벼운 쓴맛을 재현할 수 있습니다. 기장 가루나 조 가루로도 대체할 수 있지만 풍미가 조금 달라집니다.

이 요리에는 알레르기 유발 식재료가 들어 있습니다. 밀(박력분), 땅콩(땅콩버터), 메밀(대체 식재료로 기재), 유제품(요거트)이 포함됩니다. 밀 알레르기가 있다면 박력분을 생략하고 수수 가루만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글루텐프리 대응). 땅콩 알레르기가 있다면 땅콩버터 대신 참깨 페이스트를 사용하세요.
키스라 반죽은 최소 12시간, 이상적으로는 24시간 발효가 필요합니다. 전날 밤에 반죽해 두고 다음 날 부치는 것이 가장 효율적입니다. 실온이 낮은 겨울에는 발효가 느려지므로 오븐의 발효 기능(35℃ 전후)이나 요거트 메이커를 활용하세요. 요거트를 넣으면 발효 시작이 빨라지지만, 없어도 실온에서 자연 발효됩니다.

요리 요령
키스라 성공의 80%는 발효로 정해집니다. 이상적인 발효 온도는 2535℃입니다. 추운 겨울(실온 1520℃)에는 발효가 느려지므로 다음 방법으로 온도를 확보하세요. (1) 요거트 메이커에 넣는다(가장 안정적), (2) 오븐의 발효 기능을 35℃로 설정한다, (3) 밥솥의 보온 모드 위에 젖은 행주를 덮어 간접적으로 데운다. 여름에는 직사광선을 피하고 서늘한 곳에서 발효시킵니다.
키스라 반죽은 '커피 크림보다 약간 되직한 정도' 가 이상적입니다. 숟가락으로 들어 올려 떨어뜨렸을 때 끊기지 않는 실 모양으로 떨어지는 것이 정답입니다. 너무 걸쭉하면 두껍게 부쳐지고, 너무 묽으면 너무 얇아 찢어집니다. 발효 후 수분이 늘어나므로 발효 전에는 '약간 되직하게' 반죽하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키스라를 고르게 얇게 부치려면 프라이팬 온도가 안정적이어야 합니다. 센불이면 반죽이 너무 빨리 굳어 펴지지 않고, 약불이면 질척해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중약불(팬에 물을 떨어뜨리면 천천히 증발하는 정도) 을 유지하세요. 한 장 부칠 때마다 팬을 10초쯤 불에서 내리면 온도가 안정됩니다.
키스라 단독은 절제된 맛입니다. 발효의 신맛과 곡물의 단맛은 지방과 향신료를 품은 스튜(물라)와 합쳐야 비로소 완성되는 맛입니다. 물라의 땅콩 기름기가 키스라 반죽에 스며들어, 키스라는 향신료의 풍미를 나르는 '그릇' 역할을 합니다. 이 관계는 인제라와 도로 왓의 관계와도 통합니다.
응용·변형

기장(밀릿) 키스라
수단 서부 다르푸르 지방에서는 수수 대신 기장 가루(펄 밀릿 가루) 를 쓴 키스라가 일반적이라고 합니다. 기장 가루 300g으로 똑같이 만들 수 있습니다. 수수 버전보다 단맛이 조금 강하고 색은 밝은 노란색입니다. 기장 가루는 자연식품점이나 온라인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
밀가루 블렌드 버전(초보자용)
본고장의 맛에 구애받지 않는다면 박력분 150g + 수수 가루 150g 블렌드를 추천합니다. 박력분의 글루텐이 반죽을 이어 주어 잘 찢어지지 않고 다루기 쉬운 키스라를 부칠 수 있습니다. 발효 시간은 같은 12~24시간입니다. 처음 키스라를 만드는 분은 이 블렌드 버전부터 시작하면 실패가 적습니다.
메밀가루 키스라(일본풍 응용)
수수 가루 대신 메밀가루 300g을 쓰면 프랑스의 갈레트(메밀 크레이프)에 가까운 완성이 됩니다. 메밀가루도 글루텐프리이고 발효와 궁합이 좋아, 독특한 고소함이 물라의 향신료와 잘 어울립니다. 발효는 마찬가지로 12~24시간이지만, 메밀가루는 부푸는 힘이 조금 강하므로 물을 50ml 더 넣어 묽은 반죽으로 하세요. 인도의 키츠디처럼 곡물과 향신료의 조합은 국경을 넘는 보편성이 있습니다.
스위트 키스라(디저트 버전)
반죽에 설탕 2큰술과 계핏가루 1작은술을 넣고, 부친 키스라에는 꿀과 간 참깨를 뿌립니다. 수단의 명절(이드 알피트르 등)에 만드는 디저트 버전으로 아이들에게도 인기입니다. 알제리의 쇼르바 프리크도 라마단이 끝난 명절에 빠지지 않는 요리입니다.
닭고기와 채소 물라
소고기 대신 뼈 있는 닭다리살 4개를 쓰고 가지 2개와 주키니 1개를 더합니다. 닭고기는 먼저 겉을 구운 뒤 끓이면 껍질의 젤라틴이 국물에 걸쭉함을 더합니다. 수단 남부에서 선호하는 스타일로, 가나의 푸푸에 곁들이는 라이트 수프와도 비슷한 가벼움이 있습니다.
이 요리의 배경
수수와 나일강 문명
키스라의 주원료인 수수(Sorghum bicolor)는 아프리카 대륙 동부를 기원으로 하는 곡물입니다. 수단 동부의 고고학 연구에서 기원전 4천 년기에 수수가 작물화된 증거가 보고되어 있습니다(Winchell et al., 2017, Current Anthropology).
수수는 가뭄에 극히 강한 곡물로 나일강 유역의 반건조 기후에 완벽하게 적응해 있습니다. 밀이나 쌀이 자라지 않는 환경에서도 수수는 수확할 수 있고, 이것이 수단 요리에서 수수가 주식의 자리를 지켜 온 가장 큰 이유입니다.
발효 문화와 '아진'
수단의 발효 식품 문화는 세계적으로 봐도 매우 다채롭습니다. 앞서 언급한 하미드 디라르 교수는 수단의 전통 발효 식품을 체계적으로 정리했습니다.
키스라의 발효에는 '아진(ajin / عجين)'이라고 불리는 스타터 문화(씨 이어 가기)가 쓰입니다. 전날 키스라 반죽 남은 것을 다음 반죽에 넣는 사워도우 방식으로, 각 가정의 아진은 여러 세대에 걸쳐 이어져 온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이 '스타터 문화의 계승'은 각 가정에서 발효 식품의 균을 대대로 이어 가는 것과 통하는 개념입니다. 수단 가정에서는 "우리 집 아진은 할머니 때부터 쓰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사람도 많아, 발효 식품에서 미생물의 문화적 계승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엿볼 수 있습니다.
수단의 식탁 예절과 함께 먹는 문화
수단의 식사는 '수프라(sufra)' 라고 부르는 큰 둥근 쟁반을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수프라 위에 키스라를 펼치고 그 위에 물라(스튜)와 샐러드를 놓습니다. 가족과 손님이 수프라를 둘러싸고 오른손으로 키스라를 찢어 물라에 찍어 먹습니다.
낯선 여행자에게도 집으로 초대해 키스라와 물라로 대접하는 것이 아주 당연한 문화이며, 함께 식사하는 것은 최고의 환영의 표시로 여겨집니다.
보스니아의 부렉(일본어)이 손님을 대접하는 요리이듯, 세계 각지의 '대접 요리'에는 공통된 따뜻함이 있습니다. 키스라와 물라를 둘러싼 식탁에는 수단 사람들의 너그러움과 따뜻함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키스라의 지역 차이
수단에서는 지역마다 키스라 만드는 법과 먹는 법에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 하르툼·중부: 가장 표준적인 수수 가루 키스라. 얇고 고르게 부친다
- 다르푸르·서부: 기장 가루 키스라가 주류. 약간 두껍게 부치고 표면에 식용유를 바른다
- 동부(카살라): 작게 부쳐서 롤 모양으로 말아 스튜에 적신다
- 북부(누비아 지방): 수수와 대추야자를 함께 반죽한 달콤한 키스라가 전통
영양 정보(키스라 3장 기준)
수수는 천연 글루텐프리 곡물입니다. 키스라는 발효로 수수의 피트산이 분해되어 철분이나 아연 등 미네랄의 흡수율이 높아집니다. 발효 식품으로서의 프로바이오틱스 효과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 영양소 | 함량 |
|---|---|
| 칼로리 | 285kcal |
| 단백질 | 8g |
| 지방 | 4g |
| 탄수화물 | 56g |
| 식이섬유 | 5g |
| 나트륨 | 320mg |
수수에는 비타민 B군(특히 B1, B3)과 철분이 풍부합니다. 물라의 소고기와 땅콩과 함께 먹으면 단백질과 지방이 보완되어 영양 균형이 잡힌 한 끼가 됩니다.
함께 만들고 싶은 요리
- 아프리카 요리 입문 - 같은 지역의 식재료와 향을 돌려 쓸 수 있습니다.
- 에티오피아 요리 입문 - 같은 지역의 식재료와 향을 돌려 쓸 수 있습니다.
- 모로코 요리 입문(일본어) - 같은 지역의 식재료와 향을 돌려 쓸 수 있습니다.
- 에그보 만드는 법(일본어) - 같은 지역의 식재료와 향을 돌려 쓸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처음 키스라를 만드는 분들이 자주 하는 질문을 모았습니다. 발효 관리부터 보관 방법, 대체 식재료까지 설명합니다.
Q1. 수수 가루를 구할 수 없어요. 무엇으로 대체할 수 있나요?
가장 가까운 대체는 통밀가루 200g + 메밀가루 100g 조합입니다. 통밀가루가 곡물감을, 메밀가루가 독특한 풍미와 색을 보충합니다. 기장 가루나 조 가루도 쓸 수 있지만 단독으로는 풍미가 달라, 통밀가루와 반반 블렌드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어느 경우든 발효는 똑같이 할 수 있습니다.
Q2. 발효가 잘 안 되면 어떻게 하나요?
12시간이 지나도 거품이 보이지 않으면 온도가 낮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요거트 메이커로 옮기거나, 미지근한 물(35℃ 정도)을 담은 큰 볼에 반죽 볼을 넣어 중탕하듯 데워 주세요. 또 플레인 요거트 2큰술을 추가해 섞으면 발효가 빨라집니다. 그래도 24시간 안에 발효되지 않으면 반죽을 버리지 말고 소량의 드라이이스트(1/4작은술) 를 넣어 4~6시간 기다리세요.
Q3. 키스라는 며칠 보관할 수 있나요?
부친 키스라는 랩으로 밀봉해 냉장고에서 3일 보관할 수 있습니다. 먹기 전에 전자레인지에서 10초 데우거나 프라이팬에서 양면을 가볍게 데우면 부드러움이 돌아옵니다. 냉동 보관은 1개월 가능합니다. 한 장씩 랩으로 싸서 지퍼백에 넣어 냉동하고, 먹을 때는 자연 해동한 뒤 데우세요.
Q4. 키스라는 한쪽 면만 굽는데 안전한가요?
네, 안전합니다. 키스라 반죽은 얇아서 한쪽 면의 여열만으로 전체가 익습니다. 표면이 완전히 마르고 무광 질감이 되었다면 가열이 충분합니다. 걱정되면 굽는 시간을 30초 늘리거나 뚜껑을 덮어 찌듯이 구우세요. 발효 중 젖산균의 활동으로 반죽의 pH가 내려가 있는 것도 식품 안전상 플러스로 작용합니다.
Q5. 키스라와 인제라는 무엇이 다른가요?
주된 차이는 원료와 식감입니다. 키스라는 수수 가루를 쓰고, 얇고 유연한 크레이프 모양으로 부칩니다. 인제라는 테프 가루를 쓰고 스펀지 모양으로 두껍게 부칩니다. 키스라는 접거나 말아서 먹는 경우가 많은 반면, 인제라는 접시 대신 스튜 밑에 깔아 먹습니다. 둘 다 발효에 의존하지만 쓰는 곡물과 굽는 방법이 다릅니다.
참고 자료
- Dirar, H. A. (1993). The Indigenous Fermented Foods of the Sudan: A Study in African Food and Nutrition. CAB International.
- Winchell, F., et al. (2017). "Evidence for sorghum domestication in fourth millennium BC eastern Sudan." Current Anthropology, 58(5), 673-683. https://doi.org/10.1086/69389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