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날 점심에 먹는, 흰 콩의 진수성찬
냄비 가장자리에서 콩이 보글보글 흔들리고, 초리소의 붉은 기름이 조금씩 떠올라요. 파바다 아스투리아나(Fabada asturiana)는 그 시간을 서두르지 않는 요리예요. 스페인 북부 아스투리아스에서 추운 계절에 먹는 흰강낭콩 스튜로, 현지에서는 점심의 주인공으로 나와요.
스페인 요리라고 하면 파에야 발렌시아나(일본어)나 가스파초의 산뜻한 색을 떠올리는 분이 많을 거예요. 파바다는 그 반대편에 있어요. 흰 콩, 돼지고기 가공품, 사프란, 약간의 양파. 재료는 적은데 먹으면 산속 여관에서 점심을 먹은 듯한 묵직함이 있어요.
아스투리아스는 스페인 북부에서 바다와 산 사이에 있는 지방이에요. 남쪽 관광지를 떠올리고 가면 공기의 습기와 겨울의 추위가 조금 달라요. 그래서 파바다는 밤늦게 집어 먹는 가벼운 타파스가 아니라 점심에 든든히 먹고 그 뒤에는 잠시 쉬고 싶어지는 요리로 보는 편이 이해가 돼요. 흰 콩에 초리소의 붉은 기름이 천천히 배어드는 냄비는 화려하지 않아도 식탁의 중심을 충분히 잡아요.
현지의 두 기둥은 파베스(fabes)라고 부르는 큰 흰 콩, 그리고 콤팡고(compango)라고 부르는 돼지고기 가공품의 조합이에요. 콤팡고에는 초리소, 모르시야, 라콘, 판세타 등이 들어가요. 이것들을 모두 갖추기는 쉽지 않아서 이 글에서는 흰강낭콩이나 카넬리니콩, 파프리카가 들어간 초리소, 베이컨으로 만들고 모르시야는 구할 수 있을 때만 더하는 구성으로 해요.
코시도 마드릴레뇨(일본어)가 세 막으로 나눠 먹는 큰 냄비 요리라면 파바다는 하나의 냄비에 모든 감칠맛을 가둔 스튜예요. 같은 콩 요리라도 그리스의 파솔라다보다 기름기와 훈연 향이 진하고 브라질의 페이조아다보다 간은 조용해요. 콩을 으깨지 않고 고기의 향이 서서히 배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현지 식탁에서 보는 파바다와 콤팡고
파바다는 아스투리아스 지방을 대표하는 스튜예요. Spain.info의 공식 레시피에서는 4인분에 파베스 400g, 아스투리아스산 초리소, 건조 훈제 모르시야, 라콘, 베이컨, 사프란, 소금을 쓰고, 콩을 하룻밤 불린 뒤 넓은 뚝배기에 끓이는 흐름을 소개해요.
Asturias 공식 관광 사이트의 레시피에도 콩, 모르시야, 초리소, 마늘, 월계수잎, 베이컨, 양파, 파프리카가 재료로 올라 있고, 고기를 먼저 데쳐 불순물을 빼는 것과 마지막에 사프란을 넣는 것이 순서에 들어가요. 콩과 고기를 그냥 끓이는 것이 아니라 맑은 국물과 콩의 모양을 지키는 요리로 보면 불 조절의 의미가 이해하기 쉬워요.
이 요리의 재미있는 점은 진한 재료를 쓰는데도 간을 하는 손길은 꽤 조용하다는 거예요. 토마토를 넣어 새콤달콤하게 하지도, 고추로 맵게 하지도 않아요. 콩 불린 물, 고기에서 나오는 짠맛, 초리소의 붉은 기름, 사프란의 향이 약불의 냄비 안에서 조금씩 하나가 되기를 기다려요. 그래서 집에서 만들 때도 모자란 맛을 소스나 간장으로 채우기보다 콩의 크기, 고기의 짠맛, 불 조절을 가다듬는 편이 지름길이에요.
현지에서는 고기를 큰 채로 끓여 먹기 전에 썰거나 콩과 별도의 접시에 내기도 해요. 가정에서는 처음부터 작게 썰어 두는 편이 먹기 좋아 보이지만 먼저 너무 잘게 하면 초리소와 모르시야가 부서져 국물에 기름기와 가루 같은 느낌이 나와요. 이 레시피에서 '고기를 중간에 꺼내 썬다'고 한 것은 보기 좋게 하려는 것만이 아니에요. 콩을 조용히 끓이는 시간과 고기를 먹기 좋은 크기로 정리하는 타이밍을 나누기 위해서예요.
| 보는 포인트 | 파바다에서 중요한 것 | 가정 부엌에서의 타협점 |
|---|---|---|
| 현지 이름 | Fabada asturiana. 파베스를 쓰는 아스투리아스의 콩 스튜 | 글에서는 '파바다'로 표기하고 본문에서 현지 이름을 병기 |
| 콩 | 원래는 Faba Asturiana IGP의 큰 흰 콩 | 흰강낭콩, 흰 꽃콩, 카넬리니콩으로 대체. 통조림 삶은 콩은 시간 단축판 |
| 고기 | 콤팡고. 초리소, 모르시야, 라콘, 판세타 | 파프리카 들어간 초리소, 베이컨, 돼지 목살로 가깝게 |
| 향 | 사프란, 훈제 고기, 파프리카의 붉은 기름 | 사프란 소량과 훈제 파프리카로 윤곽을 보충 |
| 먹는 법 | 점심의 무거운 한 접시. 고기는 썰어 별도 접시에 내기도 한다 | 빵, 푸른 샐러드, 사과식초의 신맛을 곁들인다 |
IGP인 Faba Asturiana는 Phaseolus vulgaris의 전통 품종 Granja Asturiana를 건조 콩으로 다루는 제도예요. 같은 콩을 매번 구하기는 어려우니 완전히 같은 것을 고집하기보다 '알이 크고 잘 무르지 않으며 끓이면 크리미해지는 콩'을 고르세요. 너무 작은 흰강낭콩으로도 만들 수 있지만 파바다다운 여유로운 먹는 맛은 조금 약해져요.
재료 (4인분)
마른 콩으로 만드는 기본 분량이에요. 통조림 삶은 콩을 쓸 때는 마른 콩 400g 대신 삶은 콩 800g을 쓰고 끓이는 시간을 45분 정도로 줄여요. 다만 통조림은 콩이 쉽게 부서지므로 냄비를 젓는 횟수를 줄이세요.

이 요리에는 돼지고기와 소시지류가 들어가요. 초리소나 베이컨은 제품에 따라 유제품, 밀, 대두를 포함하는 경우가 있으니 표시를 확인하세요. 염분은 가공육에서 나오므로 처음부터 소금을 많이 넣지 말고 마지막에 작은술 단위로 맞추세요.
장을 볼 때 따로 챙길 만한 것은 콩, 초리소, 사프란, 훈제 파프리카예요. 평범한 양파, 마늘, 베이컨은 가까운 마트에서 사고, 향을 정하는 것만 전문 식료품점이나 온라인에서 구하면 낭비가 적어요.
만드는 법
콩은 세게 끓이면 껍질이 터지고 국물이 탁해져요. 냄비를 저어서 맛을 고르게 하는 요리가 아니라 냄비를 흔들어 콩을 움직이는 요리라고 생각하세요.
실패하기 쉬운 곳과 되살리는 법

파바다에서 가장 많은 실패는 맛이 싱거운 것이 아니라 콩이 갈라지는 거예요. 콩이 갈라지면 국물이 갑자기 무거워지고 고기의 기름을 너무 받아 흐릿해져요. 맛을 진하게 하기 전에 불 조절과 수위를 다시 보세요.
| 상태 | 원인 | 되살리는 법 |
|---|---|---|
| 콩 껍질이 터졌다 | 센 불로 펄펄 끓였다, 나무주걱으로 저었다 | 불을 끄고 10분 쉬게 하고 이후엔 약불. 부서진 만큼은 국물의 걸쭉함으로 삼는다 |
| 콩에 심이 남았다 | 불림 부족, 오래된 콩, 물이 적다 | 끓는 물이 아니라 물 100ml를 더하고 약불로 30분 연장 |
| 짜다 | 초리소나 베이컨의 염분이 강하다 | 삶은 흰강낭콩 200g이나 감자 150g을 넣고 15분 끓인다 |
| 국물이 묽다 | 물을 너무 많이 넣었다, 콩이 아직 딱딱하다 | 뚜껑을 열고 약불로 15분 끓여 수분을 날린다 |
| 고기가 질기다 | 데친 뒤 센 불로 끓였다 | 고기만 꺼내 얇게 썰어 콩 속에서 10분 다시 데운다 |
현지 레시피에 있는 '냄비를 움직인다'는 콩을 으깨지 않고 국물을 돌리기 위한 동작이에요. 집에서는 냄비 장갑을 끼고 좌우로 2~3cm만 흔드는 정도면 충분해요. 냄비를 크게 흔들면 뜨거운 국물이 튀니 무리하지 마세요.
집에서 어디까지 본고장에 가깝게 할까
대체할 때 지키고 싶은 순서는 콩, 초리소, 기름기 있는 돼지고기, 사프란이에요. 모르시야는 맛의 깊이를 만들지만 구하기 어렵고 피 향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있어요. 첫 번째부터 찾아다니기보다 파프리카 들어간 초리소와 베이컨을 충분히 쓰고 콩을 으깨지 않는 것을 우선하세요.
콩은 흰강낭콩이 다루기 쉬워요. 흰 꽃콩은 크고 보기 좋지만 껍질이 두꺼운 편이라 끓이는 시간이 길어져요. 카넬리니콩은 구하기 쉽고 가볍게 완성돼요. 통조림은 평일용이지만 파바다의 '냄비가 자라는 느낌'은 약해져요.
초리소는 멕시코식 생초리소와 스페인식 건조 또는 반건조 초리소의 맛이 달라요. 파바다에 맞는 것은 파프리카 향이 있고 끓여도 모양이 남는 타입이에요. 생초리소밖에 없다면 데치지 말고 마지막 30분에 넣으세요. 일찍 넣으면 부서져 국물이 붉은 간 고기 수프가 돼요.
사프란은 소량이면 돼요. 향이 싫거나 예산을 아끼고 싶으면 생략할 수 있어요. 다만 강황으로 대신하면 다른 방향의 향이 나므로 색만 쫓아서 넣을 필요는 없어요. 훈제 파프리카는 초리소가 순할 때의 보조예요. 너무 많이 넣으면 훈연 맛만 앞에 나와요.
장을 볼 때 망설여지면 모든 것을 갖추기보다 요리의 골격을 무너뜨리지 않는 순서로 판단하세요. 특히 콩과 불 조절은 대체로 메우기 어려워서 여기를 놓치면 '스페인풍 콩 수프'는 되어도 파바다다운 묵직함에서 멀어져요.
| 망설여지는 것 | 우선도 | 판단 기준 |
|---|---|---|
| 큰 알의 마른 흰강낭콩 | 높음 | 마른 콩을 불려 쓰면 국물이 자연스럽게 진해진다. 통조림이면 단시간판으로 받아들인다 |
| 파프리카 들어간 초리소 | 높음 | 요리 전체의 붉은 기름과 훈연 향을 만든다. 매운맛보다 파프리카 향이 있는 것을 고른다 |
| 모르시야 | 중간 | 있으면 깊은 맛이 나지만 처음에는 없어도 된다. 억지로 다른 피 들어간 식품으로 대체하지 않는다 |
| 사프란 | 중간 | 소량으로 현지다운 향에 가까워진다. 예산이 빠듯하면 생략하고 강황으로 노란색만 더하지 않는다 |
| 뚝배기・카수엘라 | 낮음 | 두꺼운 냄비면 충분. 중요한 것은 바닥이 넓고 약불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것 |
한편 바꾸지 않는 편이 좋은 것은 '세게 끓이지 않는다' '콩을 휘젓지 않는다' '소금은 마지막에 정한다'의 세 가지예요. 재료가 조금 달라도 이 셋을 지키면 콩은 모양을 유지한 채 크리미해지고 가공육의 짠맛도 튀지 않고 가라앉아요.
먹는 법, 상차림, 보관
아스투리아스에서 파바다는 따뜻하고 묵직한 점심으로 먹어요. 저녁 식탁에 낸다면 주식을 너무 늘리지 말고 빵과 푸른 샐러드, 사과식초나 피클을 조금 곁들이면 먹기 편해요. 밥과 함께 먹을 수도 있지만 콩과 고기만으로 충분히 배가 불러요.

같은 스페인 요리로 짠다면 전채는 차가운 가스파초, 달걀 요리를 조금 더하고 싶다면 토르티야 에스파뇰라가 어울려요. 무거운 요리를 겹치고 싶지 않은 날은 피데우아나 파에야 대신 산미가 있는 샐러드를 먼저 놓는 편이 식탁이 편해져요.
보관은 냉장 3일, 냉동 3주가 기준이에요. 한김을 20분쯤 빼고 얕은 용기로 옮겨 냉장하세요. 큰 냄비째 냉장하면 중심이 식기 어렵고 다음 날 맛도 무거워져요. 데울 때는 작은 냄비에 먹을 만큼만 옮기고 물 2큰술을 더해 약불로 8~10분. 전자레인지라면 600W로 2분 데우고 젓지 말고 그릇을 흔든 뒤 1분 더 데워요.
다음 날은 국물을 조금 늘려 수프로 해도 좋아요. 콩이 부서져 있으면 빵에 올려 먹는 쪽이 어울려요. 초리소가 남으면 다져서 달걀과 함께 구워 토르티야풍으로 하면 다음 날 아침 식탁으로 이어져요.
자주 묻는 질문
Q1. 통조림 삶은 콩만으로 만들 수 있나요?
만들 수 있어요. 삶은 흰강낭콩 800g을 쓰고 끓이는 시간은 45분 정도로 해요. 처음부터 고기와 함께 오래 끓이면 콩이 부서지니 고기, 양파, 마늘을 30분 끓인 뒤 삶은 콩을 넣고 약불로 15분 어우러지게 하세요. 마른 콩보다 가볍게 완성되지만 평일에 재현하기에는 충분해요.
Q2. 모르시야가 없어요. 안 넣으면 다른 요리가 되나요?
다른 요리가 되지는 않지만 맛의 깊이는 조금 달라져요. 모르시야는 피의 진한 맛과 훈연 향을 더하는 역할이에요. 넣지 않을 때는 베이컨을 40g 늘리고 훈제 파프리카를 1/2작은술 써요. 검은 듯한 진한 맛을 더하려고 간장을 늘리면 스페인 요리에서 멀어지니 넣는다면 1작은술까지만 하세요.
Q3. 사프란은 필수인가요?
필수는 아니에요. Spain.info의 공식 레시피에는 사프란이 들어가지만 집에서는 생략해도 콩과 고기 스튜로 성립해요. 향을 본고장에 가깝게 하고 싶을 때는 6가닥만 쓰고 뜨거운 물로 색을 낸 뒤 마지막 15분에 넣으세요. 강황은 색은 비슷해도 향이 다르므로 대체라기보다 다른 응용이에요.
Q4. 콩을 빨리 부드럽게 하려고 베이킹소다를 넣어도 되나요?
오래된 콩이나 경수로 끓일 때는 불리는 물에 베이킹소다를 한 꼬집 넣는 방법이 있어요. 다만 너무 많으면 콩 껍질이 약해져 쉽게 무르니 이 레시피에서는 넣지 않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정말 딱딱한 콩이라면 불릴 때 0.5g만 넣고 끓이기 전에 물을 갈아 주세요.
Q5. 무엇과 함께 먹으면 너무 무겁지 않을까요?
빵, 푸른 잎 샐러드, 사과식초, 피클이 어울려요. 아스투리아스에서는 시드라와 함께하는 맥락도 있지만 집에서는 탄산수나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으로도 기름기를 잡을 수 있어요. 같은 날 밥 요리나 튀김을 더하면 무거워지기 쉬우니 전채는 차가운 채소로 하면 콩과 가공육의 무게가 끝까지 먹기 편하게 남아요.
Q6. 전날 만들면 더 맛있나요?
꽤 맛있어져요. 불을 끄고 식히는 동안 콩이 국물을 빨아들이고 고기의 짠맛이 가라앉아요. 다음 날 낼 때는 냉장한 냄비를 그대로 센 불에 올리지 말고 먹을 만큼만 작은 냄비로 옮겨 물 2~3큰술을 더해 약불로 데우세요. 센 불로 서두르면 냄비 바닥의 콩이 갈라져요.
참고 문헌
- Spain.info "Recipe: 'Fabada' (Asturian bean stew). Spanish cuisine" 2026년 5월 참조
- Turismo Asturias "Asturian Fabada" 2026년 5월 참조
- Faba Asturiana IGP "La faba de Asturias" 2026년 5월 참조
- Wikipedia "Fabada asturiana" 2026년 5월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