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팬 안에서 붉게 물든 닭고기가 지글지글 구워져요. 겉이 짙은 붉은 갈색이 되면 꺼내고, 같은 기름에 피망과 양파를 숨이 죽을 때까지 볶은 다음 닭고기를 도로 넣고 물을 부어요. 뚜껑을 덮고 1시간 동안 보글보글 끓이는 사이 국물은 걸쭉한 그레이비로 바뀌어요. 중미의 작은 나라 벨리즈에서 일요일 점심에 라이스 앤드 빈스와 함께 먹는 익숙한 닭고기 스튜가 바로 스튜 치킨(stew chicken)이에요. 붉은색의 정체는 아나토 씨앗으로 만든 향신료 페이스트 레카도예요. 레카도가 없어도 구하기 쉬운 재료로 대신할 수 있어요.
벨리즈의 일요일은 라이스 앤드 빈스

벨리즈는 멕시코와 과테말라 사이에서 카리브해와 맞닿은 나라예요. 스페인어권인 중미에 있으면서도 영어를 공용어로 쓰고, 아프리카계와 유럽계 사람들의 후손인 크레올 문화가 뿌리내렸어요. 벨리즈 관광청 사이트 Travel Belize는 크레올 사람들의 식탁을 코코넛 밀크와 코코넛 오일, 쌀, 콩, 닭고기, 생선을 기본으로 한 음식 문화라고 소개해요.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라이스 앤드 빈스예요. Travel Belize에 따르면 이 요리는 벨리즈 일요일 저녁의 단골 메뉴로, 코코넛으로 지은 밥과 콩에 푹 끓인 고기나 튀긴 생선, 감자 샐러드 또는 코울슬로를 곁들여 먹어요. 끓인 고기의 예로는 닭고기 외에 숲에 사는 큰 설치류 깁넛(gibnut)도 꼽혀요. 그중에서 집에서도 만들기 쉬운 것이 스튜 치킨이에요.
벨리즈 크레올의 전통 요리는 '파이어 하스(fire hearth)'라는 야외 간이 화덕에서 만들어 왔어요. Travel Belize는 전통 요리는 이 화덕에서 만드는 것이라고 소개해요.
벨리즈 정글에 있는 리조트 차 크릭(Chaa Creek)의 여행 블로그는 라이스 앤드 빈스와 스튜 치킨을 벨리즈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식사라고 적어요. 나라 어디를 가도, 바다 건너 작은 섬(caye)에 가도 이 조합을 만난다고 해요.
색과 향을 정하는 붉은 레카도

스튜 치킨의 색과 향을 정하는 것이 붉은 레카도(red recado)예요. 벨리즈와 중미에서 만드는 향신료 페이스트로, 아치오테 나무(achiote)의 씨앗에서 얻은 아나토로 붉게 물들였어요. 조금만 써도 고기가 선명한 붉은 갈색으로 물들고, 흙내음 같은 은은한 향이 더해져요. 매운맛은 거의 없어요.
벨리즈에 살면서 요리를 배운 셰프 로자나 스티븐스(Rosanna Stevens)의 레시피에서는 이 레카도에 간장과 우스터소스를 섞어 닭고기에 밑간을 해요. 간장은 동아시아에서, 우스터소스는 영국에서 건너온 조미료예요. 중미에서 오래전부터 써 온 아나토와 먼 나라의 조미료가 한 냄비에서 만나는 모습에, 여러 사람이 오가며 만들어 온 벨리즈의 식탁이 담겨 있어요.
레카도에는 붉은 것 말고도 고추를 새까맣게 태워 만드는 '검은 레카도'가 있어요. 검은 레카도는 벨리즈의 이웃 나라 멕시코 유카탄반도의 요리 렐레노 네그로 등에 쓰이고, 스튜 치킨에 쓰는 것은 붉은 쪽이에요.
재료 (4인분)

로자나 스티븐스의 레시피를 바탕으로, 구하기 쉬운 재료로 바꾼 배합이에요. 붉은 레카도는 라틴아메리카 식재료점이나 온라인에서 아치오테 페이스트로 팔기도 해요. 구하기 어려우면 아나토 가루와 식초, 마늘로 만드는 즉석 버전으로 대신해요.
닭고기 밑간
아나토 가루는 아치오테 씨앗을 가루로 낸 향신료로, 라틴아메리카 요리와 필리핀 요리에서 색을 내는 데 써요. 즉석 버전은 벨리즈에서 파는 레카도보다 향이 단순해지니, 커민과 오레가노를 빼지 말고 넣어서 향을 보완하세요.
아나토의 붉은색은 손, 도마, 행주에 묻으면 잘 지워지지 않아요. 닭고기에 주물러 바를 때는 일회용 장갑을 끼고, 흰 도마는 피하는 편이 무난해요. 간장과 우스터소스에는 밀과 대두가 들어 있으니, 알레르기가 있는 분은 원재료를 확인하세요.
스튜 치킨 만드는 법
밑간을 해서 냉장고에서 2시간 재우는 시간을 포함해 준비에 약 2시간 20분, 굽고 끓이는 데 약 1시간 15분이 기준이에요. 시간이 있으면 전날 밤에 밑간을 해 두세요. 맛이 더 잘 배어요.
뼈 있는 닭고기는 뼈 주변이 가장 늦게 익어요. 끓이는 시간을 줄였다면 가장 두꺼운 부분에 꼬치를 찔러 맑은 육즙이 나오는지 확인한 뒤에 드세요.
그레이비를 걸쭉하게 완성하는 요령

스튜 치킨의 그레이비는 밀가루 등으로 농도를 내는 것이 아니라, 닭고기에서 나오는 젤라틴과 푹 녹아든 레카도, 양파로 자연스럽게 걸쭉해져요. 뚜껑을 살짝 어긋나게 얹고 끓이는 것은 수분을 천천히 날리면서 국물을 진하게 만들기 위해서예요.
1시간 끓여도 그레이비가 묽다면 뚜껑을 열고 중불에서 5분쯤 졸이세요. 반대로 너무 졸았다면 뜨거운 물을 2큰술씩 보태 농도를 맞춰요.
굽는 과정은 생략하지 마세요. 처음에 제대로 구워 두면 닭 껍질에서 기름이 나와 고소함이 더해지고, 그레이비의 색도 깊어져요. 굽지 않고 끓이면 색이 연하고 맛도 흐릿하게 완성돼요.
뼈 있는 고기를 쓰면 끓여도 살이 퍽퍽해지지 않고 뼈에서 육수도 우러나요. 가슴살로 만들 때는 끓이는 시간을 30분쯤으로 줄여 살이 너무 단단해지지 않게 하세요.
코코넛 라이스 앤드 빈스와 함께 — 응용 방법

벨리즈답게 먹으려면 흰 밥 대신 라이스 앤드 빈스를 준비하세요. 차 크릭 블로그가 소개하는 방법은 붉은 강낭콩을 마늘, 양파와 함께 부드럽게 삶고, 코코넛 밀크를 더한 뒤 쌀을 넣어 밥을 짓는 거예요. 붉은 강낭콩 통조림을 쓰면 간편하게 만들 수 있어요.
곁들임으로는 감자 샐러드나 코울슬로를 추천해요. Travel Belize가 소개하듯 벨리즈 일요일 접시에 빠지지 않는 한 가지예요. 달게 구운 플랜틴을 곁들이면 단맛과 짠맛, 향신료가 모두 갖춰진, 벨리즈의 식당 같은 한 접시가 돼요.
먹는 법

접시에 라이스 앤드 빈스나 밥을 담고 스튜 치킨을 올린 뒤 그레이비를 듬뿍 끼얹어요. 그레이비를 머금은 밥을 닭고기와 함께 크게 한입 먹는 것이 가장 맛있는 방법이에요. 매운맛이 필요하면 식탁에서 고추 소스를 뿌려 조절하세요.
같은 벨리즈 요리라면 검은 레카도로 끓이는 닭고기 수프 치몰레(일본어)와 비교해서 만들어 보면 붉은 레카도와 검은 레카도의 차이가 잘 보여요. 카리브의 닭고기 요리로는 자메이카의 저크 치킨도 향신료를 쓰는 방식이 전혀 달라서 재미있는 한 접시예요.
자주 묻는 질문

레카도와 아치오테 페이스트는 같은 건가요?
둘 다 아나토(아치오테) 씨앗을 쓴 붉은 향신료 페이스트예요. 제조사나 지역에 따라 섞는 향신료는 다르지만, 스튜 치킨에는 어느 쪽이든 쓸 수 있어요. 멕시코 요리 식재료로는 아치오테 페이스트가 더 찾기 쉬운 편이에요.
매운가요?
붉은 레카도에는 매운맛이 거의 없어서 맵지 않아요. 맵게 먹고 싶을 때는 식탁에서 고추 소스를 곁들이세요.
밑간 시간을 줄일 수 있나요?
최소 2시간은 재워 주세요. 시간이 짧으면 레카도의 색과 향이 고기 겉면에만 배어요. 전날 밤에 밑간을 해 두는 것이 가장 확실해요.
미리 만들어 둘 수 있나요?
식으면 밀폐 용기에 담아 냉장하고, 다시 데울 때는 가운데까지 뜨거워지도록 가열하세요. 보관 일수를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는 없으니 되도록 빨리 드세요.
참고 자료
- Travel Belize(Belize Tourism Board), “5 Creole Must-Eats.” 참조·확인일: 2026년 10월 22일. https://www.travelbelize.org/?p=5235
- Rosanna Stevens, “Belizean Stewed Chicken,” Rosanna ETC, 2021년 3월 17일 공개. 참조·확인일: 2026년 10월 22일. https://www.rosannaetc.com/post/belizean-food-stewed-chicken-recipe
- Chaa Creek, “Belizean Rice and Beans with Stew Chicken Recipe,” Belize Travel Blog, 2020년 5월 2일 갱신. 참조·확인일: 2026년 10월 22일. https://belize-travel-blog.chaacreek.com/2015/01/stew-chicken-rice-beans-belize-recip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