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손가락으로 먹는 초원 사람들의 진수성찬
중앙아시아의 대초원이 펼쳐진 카자흐스탄. 국토 면적 세계 9위인 이 나라에는 유목 생활 속에서 이어져 온 진수성찬이 있어요. 베시바르마크(Beshbarmak / Besbarmaq), 큰 접시에 넓적한 면을 깔고 그 위에 푹 삶은 양고기(또는 말고기)를 올린 뒤, 달큰하게 익힌 양파를 듬뿍 끼얹은 카자흐스탄의 국민 요리예요.
'베시바르마크'는 카자흐어로 '다섯 손가락'이라는 뜻이에요. 이름 그대로 전통적으로는 오른손 다섯 손가락으로 면과 고기를 집어 먹어요. 포크도 숟가락도 쓰지 않아요. 유목 생활 속에서 태어난 이 요리는 식기를 들고 다닐 필요가 없고, 큰 접시 하나로 가족이나 손님과 나눌 수 있게 되어 있어요.
카자흐어로 '베시(bes)'는 다섯, '바르마크(barmaq)'는 손가락. 손으로 먹는 데서 온 이름이에요. 카자흐스탄 외에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북부, 바시코르토스탄(러시아 연방), 몽골 서부에서도 먹어요.
영어권에서는 'Kazakhstan's national dish'로 많은 문헌과 레시피 사이트에 소개되어 있어요. 우즈베키스탄의 플로프(일본어)나 만티와 나란히 중앙아시아를 대표하는 요리인데도 인지도는 훨씬 낮은 편이에요. 이 글에서는 카자흐스탄 가정에서 이어져 온 베시바르마크 조리법을, 가까운 마트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재현하는 방법을 설명해요.
재료(4인분)
면에는 밀가루와 달걀이 들어가요. 밀·달걀 알레르기가 있는 분은 주의해 주세요. 고기 수프(소르파)만이라면 알레르겐은 적지만, 면을 그 육수에 삶는 과정이 있어요.
조리 순서
고기 삶기(소르파 만들기)
면 만들기
양파 소스(투즈득) 만들기
담기
카자흐스탄에서는 베시바르마크를 먹을 때 먼저 작은 그릇(피알라)으로 소르파를 마시는 것부터 시작해요. 고기와 뼈에서 우러난 맑은 수프가 식사 전에 속을 데워 줘요. 식사 마지막에도 다시 소르파를 마시며 마무리하는 것이 정식 예법이에요.
조리 요령
소르파의 맑기는 베시바르마크의 완성도를 크게 좌우해요. 끓어오른 뒤 처음 15분은 냄비 곁에 서서 떠오르는 거품을 부지런히 걷어 내 주세요. 회색 거품이 더 나오지 않을 때까지 계속해요. 그러면 소르파가 탁해지지 않고 금빛으로 맑은 수프가 돼요.
칼로 썰면 아무래도 결이 끊겨 퍽퍽한 식감이 되기 쉬워요. 손으로 찢으면 결을 따라 자연스럽게 갈라져 면이나 소스와 잘 어우러져요. 화상에 주의하면서 아직 따뜻할 때 찢는 것이 요령이에요.
다른 냄비에 물로 삶는 방법도 있지만, 고기 국물에 삶으면 면에 감칠맛이 스며들어요. 국물의 염분으로 면에도 밑간이 돼요. 이 한 번의 수고가 베시바르마크 맛의 일체감을 만들어요.
응용과 변형
고기 변형
말고기 베시바르마크(카즈 넣기): 카자흐에서는 양고기와 함께 말고기도 자주 쓰고, 잔칫상에서는 말기름이 든 카즈(말고기 소시지)를 넣기도 해요. 말고기는 특유의 단맛이 있어 양고기와는 다른 풍미를 즐길 수 있어요.
중앙아시아의 식문화에서는 쓰는 고기가 지역과 계절에 따라 달라져요.
소고기 베시바르마크: 소고기로 만들기도 해요. 소 사태 800g을 2시간 반 삶아요. 양고기보다 냄새가 적어 먹기 편해요.
닭고기 베시바르마크: 경제적이고 간편해요. 뼈 붙은 닭다리살 800g을 1시간 삶아요. 소르파의 풍미는 양고기만큼 풍부하지 않지만, 담백한 맛을 좋아하는 분께 잘 맞아요.
면 변형
시판 면으로 대체: 넓적한 면을 구하기 어렵다면 넓은 칼국수 면이나 라자냐 시트로 대신할 수 있어요. 소르파에 삶으면 풍미도 흡수해요. 타지키스탄의 쿠루토브(일본어)에 쓰는 얇은 빵(파티르)처럼, 밀가루 반죽이 주식을 맡는 중앙아시아 요리 체계의 한 단면이 보여요.
가까운 재료로도 베시바르마크의 정신을 재현할 수 있어요.
우동판 베시바르마크: 삶은 우동을 고기 국물에 데우고, 찢은 삶은 고기와 양파 소스를 끼얹어요. '고기 우동'의 변주로 즐길 수 있어요.
이 요리의 배경: 유목민의 식문화

유목민의 지혜
베시바르마크는 카자흐스탄의 광대한 스텝(초원 지대)을 옮겨 다니며 살아온 유목민의 식문화와 이어진 요리예요. 카자흐 요리는 양고기와 말고기, 유제품이 중심이고, 훈제 고기나 발효유처럼 오래 두고 먹는 음식이 많은 것도 유목 생활의 흔적으로 여겨져요.
유목민에게 가축의 고기는 귀한 식량이라, 한 마리를 남김없이 다 쓰는 지혜가 이어져 왔어요. 베시바르마크는 뼈 붙은 고기를 오래 삶아 고기의 감칠맛을 남김없이 끌어내요. 삶은 물(소르파)은 따로 수프로 마셔요. 면은 오래 두고 쓸 수 있는 밀가루와 달걀, 물로 만들 수 있어요. 한 가지 요리로 '고기·수프·탄수화물' 세 요소를 완결하는 합리성은 유목 생활의 지혜 그 자체예요.
다스타르한과 손님 대접
다스타르한(dastarkhan)은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음식을 차린 식탁이나 식탁보를 가리키는 말이에요. 카자흐 가정에서 손님을 대접할 때 그 한가운데 놓이는 것이 베시바르마크예요. 삶은 고기와 면은 큰 접시에 담고, 수프(소르파)는 따로 그릇에 내요.
귀한 손님을 맞는 잔치에서는 삶은 양의 머리(코이 바스)를 주빈에게 내놓기도 해요. 주빈은 칼을 받아 연장자부터 차례로 머리 고기를 잘라 나눠 줘요. 외국에서 온 손님이 이 주빈으로 대접받는 경우도 있다고 여행 가이드 Bradt는 소개해요. 넓적다리뼈는 연장자 남성에게, 꼬리 부분은 연장자 여성에게, 이런 식으로 부위를 나누는 예법도 전해지지만, 도시의 일상 식탁에서는 간소화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우즈베키스탄의 플로프(일본어)가 잔치 요리인 것처럼, 중앙아시아에서는 큰 접시 요리가 손님을 존중하는 마음을 나타내요.
이름과 퍼짐
'베시바르마크'는 튀르크계 말로 '다섯 손가락'을 뜻하고, 손으로 먹는 방식에서 온 이름이에요. 카자흐스탄 외에도 키르기스스탄, 바시코르토스탄, 타타르스탄 등 튀르크계 사람들이 사는 지역에 비슷한 요리가 있어요. 소련 시대의 정주화를 거친 지금도 가족 잔치나 손님 대접 자리에 빠질 수 없는 요리로 먹고 있어요.
폴란드의 피에로기(일본어)나 보스니아의 부렉(일본어)처럼, 베시바르마크는 나라의 정체성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요리예요. 조지아 요리 입문(일본어)에서 소개한 캅카스 지방의 식문화와는 다른, 스텝의 유목 문화가 낳은 독자적인 체계가 여기에 있어요.
영양 정보(4인분 중 1인분)
| 영양소 | 함량 |
|---|---|
| 열량 | 620kcal |
| 단백질 | 45g |
| 지방 | 24g |
| 탄수화물 | 52g |
| 식이섬유 | 3g |
| 나트륨 | 680mg |
고기와 면으로 단백질과 탄수화물을 든든히 챙길 수 있는 한 접시예요. 소르파에도 염분이 들어 있으니 마시는 양은 취향에 맞춰 조절해 주세요.
자주 묻는 질문
처음 중앙아시아 요리에 도전하는 분을 위해 재료 구하는 법부터 먹는 예절까지 답했어요.
Q1. 양고기 냄새가 신경 쓰여요. 대책은요?
양고기 냄새가 싫은 분은 찬물부터 천천히 삶기 시작해 거품을 철저히 걷어 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에요. 여기에 월계수 잎 2장, 통후추 10알, 반으로 자른 양파를 함께 넣고 삶으면 냄새가 누그러져요. 그래도 신경 쓰인다면 전날 요거트 200g에 재워 냉장고에 두면 꽤 줄어들어요.
Q2. 말고기는 꼭 필요한가요?
꼭 필요하지 않아요. 양고기만으로도 충분히 맛있는 베시바르마크를 만들 수 있어요. 말고기는 카자흐스탄에서 가장 격식 있는 버전에 쓰이는 것이고, 평소에는 양고기나 소고기로 만드는 가정이 대부분이에요. 말고기에 관심이 있다면 말고기 소시지(카즈)를 찾아보세요.
Q3. 정말 손으로 먹나요?
전통적으로는 그래요. 오른손 다섯 손가락으로 면과 고기를 집어 입으로 가져가요. 요즘 가정에서는 포크나 숟가락을 쓰는 경우도 많고, 손으로 먹을지는 자리나 가정에 따라 달라요. 처음이라면 포크로 먹어도 괜찮아요.
Q4. 소르파(수프)는 꼭 마셔야 하나요?
꼭 마셔 보길 권해요. 소르파는 베시바르마크의 본질적인 요소로, 고기와 뼈에서 우러난 감칠맛이 응축되어 있어요. 고기와 면의 큰 접시와 소르파 그릇을 함께 내는 것이 베시바르마크의 기본 형태예요. 맑은 금빛 수프는 소금, 검은 후추, 월계수 잎만으로 간해서 담백하게 맛있어요.
Q5. 남은 소르파는 어떻게 활용하나요?
다음 날 수프로 그대로 마시거나, 우동이나 소바의 국물로 쓰거나, 리소토 베이스로 써도 좋아요. 냉장으로 3일, 냉동으로 1개월 보관할 수 있어요. 기름이 떠서 굳지만, 데우면 녹으니 그대로 써도 돼요. 우크라이나의 보르시 수프 베이스로도 활용할 수 있어요.
참고 자료
- Mack, Glenn R. and Surina, Asele. Food Culture in Russia and Central Asia. Greenwood Press, 2005.(중앙아시아 식문화사)
- Bradt Guides「Kazakhstan」(베시바르마크, 코이 바스로 하는 손님 대접, 카자흐 요리의 특징. 2026년 10월 22일 확인)
- Inside the Travel Lab「Beshbarmak: The Best Thing to Do with Five Fingers in Kazakhstan」(이름의 유래와 먹는 법. 2026년 10월 22일 확인)
- Wikipedia「Beshbarmak」(이름, 분포, 부위를 나누는 법. 2026년 10월 22일 확인)
정리
베시바르마크는 유목 생활이 키운 낭비 없는 요리예요. 양 한 마리에서 고기도 수프도 탄수화물도 얻어, 남김없이 먹어요. 그 지혜가 응축된 한 접시는 단순한 겉모습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깊이가 있어요.
양고기와 밀가루라는 단순한 재료만 있으면 집에서 재현할 수 있어요. 넓적한 면이나 우동으로 대신하면 더 간편해요. 소르파의 금빛 맑은 수프를 한 모금 마시면 초원의 바람이 느껴질 거예요.
우즈베키스탄의 플로프(일본어), 타지키스탄의 쿠루토브(일본어), 조지아의 힌칼리(일본어)와 함께 중앙아시아와 캅카스의 음식 여행을 즐겨 보세요.












